Chapter 5
기적의 눈보라
추격대가 닥쳐오지만, 하늘이 내린 눈보라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다.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마침내 탈출에 성공한다.
뒷산 언덕을 향해 달리며, 나는 그녀의 가족을 챙기느라 꺾어 신었던 신발을 제대로 다시 신고 소리쳤다. “빨리 산에 붙어!”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정신없이 달렸다. 달리는 건지 기어가는 건지 분간조차 되지 않았다. 전날 밤의 피로도 풀지 못한 채 달리자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나는 그녀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말했다. “아이들은 잡혀도 괜찮다. 너만은 절대 잡히면 안 된다.” 산비탈을 넘어, 잣나무 숲으로 이어진 자그마한 경사길을 향해 달리는 나는 그저 괴물 하나였을 것이다. 잠시 멎었던 발의 상처에서 다시 피가 쏟아졌다. 신발 안에서 넘친 피가 눈 위에 붉은 자국을 남기며 이어졌다. 그때였다. 뒤에서 “엄마, 엄마, 살려줘!” 작은아이의 비명과 울음이 산을 갈랐다. 정신없이 달리던 우리 둘은 동시에 멈춰 뒤돌아보았다. 백여 미터 남짓한 거리에서 건장한 군인 다섯이 작은아이를 안고 있었다. 수갑을 채우려 하자 아이는 살려달라며 몸부림치며 울부짖었다. 한편 큰아이는 달랐다. 아무 말 없이 숨어 있다가 침착하게 옷과 신발을 챙겨 신고 다른 방향으로 달렸다. 그러나 곧 발각되어 세 명의 군인이 그의 뒤를 쫓았다. 나머지 인원은 집과 헛간, 낟알 더미, 소외양간까지 샅샅이 수색하고 있었다. 작은아이의 비명에 걸음을 멈춘 그녀는 내게 말했다. “혼자 가요.” 자기는 자식을 두고 혼자 갈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소리쳤다. “아이들은 잡혀도 괜찮아. 어른이 같이 잡히면 안 돼!” 그러나 그녀는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를 뒤로한 채 군인들을 향해 걸어갔다. 네 명의 군인이 다가와 두 명은 그녀의 팔목에 수갑을 채웠고, 나머지 두 명은 나를 향해 손짓하며 추격을 시작했다.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보았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얼마나 강하고 위대한지를. 나는 잣나무 숲으로 몸을 던졌다. 나무 그루터기에 피 흘리는 발을 올려 흔적을 지우고, 곧바로 잣나무를 타기 시작했다. 빼곡히 심어진 잣나무 사이, 가지를 붙잡고 나무에서 나무로 옮겨 다녔다. 다섯 그루쯤을 넘긴 뒤 힘이 빠져 잠시 멈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를 에워싼 군인들이 “두 명은 잡았으니 돌아가자”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두 명의 군인이 내 발자국을 따라오다 흔적이 끊기자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결국 내가 올라탄 나무 아래에 멈춰 섰다. 그들이 고개만 들면 나는 끝이었다. 세 번째 북송은 곧 사형이었다. 나는 늘 몸에 칼을 지니고 다녔다. 체포되면 그냥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품고 다닌 단도였다. 칼자루를 꽉 쥐었다. 그들이 나를 발견하면 뛰어내려 찌르고, 총을 빼앗는 장면을 머릿속에서 수없이 그려보았다. 살을 에는 추위였지만 긴장으로 칼을 쥔 손에는 땀이 흘렀다. 아래에서 다시 소리쳤다. “빨리 내려와!” 나무 밑에 있던 군인들이 아래에 대고 “내려간다.” 맞받아 응답하였다. 그들은 나무 아래에서 담배를 붙여 물고 몇 걸음 내려가다 말고 미련이 남은 듯 주변을 다시 살폈다. 그러다 결국 일행과 합류했다. 그녀는 수갑이 채워진 채였고 작은아이는 한 군인의 품에 안긴 채 급경사의 비탈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나에게 닥쳤던 위험은 그렇게 일시적으로 사라졌다. 바람에 흔들리는 잣나무 위에서 나는 붙잡혀 가는 그녀와 아이들을 그저 멍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잡히는 순간,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 다급한 상황에서 왜 잡히면 안 되는지 설명할 수도 없었고, 눈앞에서 체포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 앞에 나는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북한에서는 미성년자가 잡히더라도 밖에 보호자가 있으면 바로 풀려난다. 그러나 보호자와 함께 체포되면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감방 생활을 함께해야 한다. 어른만 무사히 빠져나가면 다시 사람을 보내 아이를 탈출시킬 수 있다. 그런데 함께 잡히고 말았다. 그 고통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이미 두 번이나 그곳을 거쳐왔다. 그 고통이 인간에게 얼마나 가혹한지,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괴로웠다.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나는 나무에서 내려와 커다란 벼랑 아래 쌓인 가랑잎 속에 몸을 맡긴 채 아래를 주시했다. 땀이 식자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속옷 차림에 피에 젖은 신발은 끄득끄득 소리를 내며 얼어붙어 갔다. 아래쪽에서는 군인들이 집합했고, 박 씨 브로커는 그들 앞에서 허리를 깊이 숙이고 있었다. 잠시 뒤 자동차 두 대가 와서 멈췄다. 군인들은 승합차에, 그녀와 아이는 승용차에 태워져 떠나갔다. 나는 떨리는 몸을 간신히 붙잡고 한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계속 통화 중이었다. 다시 한번 집 주변을 살핀 뒤 나는 급경사의 비탈길을 절뚝거리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집 근처에 거의 다다르자 개가 달려와 꼬리를 흔들며 혀로 내 얼굴을 핥아댔다. 나는 집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머저리라며 스스로를 욕하면서도 녀석의 뒤통수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그때였다. 십여 미터 앞에서 큰아이가 “아버지!” 하고 울부짖으며 나를 향해 달려와 내 품에 안겼다.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도망친 큰아이는 죽기 살기로 달리다 굽인돌이를 이용해 추격하던 변방대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그는 숲속으로 몸을 숨겨 눈이 없는 무성한 덩굴숲에 가랑잎을 덮고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숨을 죽였다. 다행히 추격은 따돌렸지만, 눈앞에서 동생과 엄마가 잡혀가는 장면을 본 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머릿속은 복잡했다. 동생과 엄마는 체포되었고, 함께 온 사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낯선 이국땅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차라리 엄마 곁으로 가 함께 체포될까 하는 생각도 스쳤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자신들을 데려온 사람이 붙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에게 마지막 희망이 되었다. ‘그 사람은 나를 찾을 것이다.’ 그 믿음 하나로 그는 엄마와 그 사람이 달아난 방향을 향해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바로 그때, 절뚝거리며 집 쪽으로 돌아오는 그 남자의 모습을 보았다. 큰아이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을 참지 못하고 “아버지!” 하고 외치며 그에게 달려갔다. 나는 “아버지” 하고 부르며 달려오는 아이를 안으며 말했다. “너라도 잡히지 않아서 다행이다. 울지 말고, 엄마와 동생을 살려달라고 기도하자.” 그러나 내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다. 내가 데려온 아이였다. 만약 그들을 구하지 못한다면 나는 한국에 가서라도 이 아이를 아들로 키우겠다고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한편 조선족 브로커는 자신은 잡히지 않아 다행이라며 변방대가 다시 올 수 있으니 언제든 도망칠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는 군인들에게 우리가 속옷 차림에 신발도 못 신고 도망쳤다고 말했다고 했다. 또 그들이 북송되면 죽을 수 있다며 어떻게 방법이 없겠느냐고 장교들에게 물어보았다고도 했다. 그리고 한국에도 체포되었다고 전화를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함께 기도하자고 했다. 그때까지 나는 그의 말이 자작극이라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신발을 신은 채 앉아 그녀와 작은아이를 위해 기도했다. 그러다 갑자기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올라 눈물이 쏟아졌다. 2010년 12월 30일, 달이 밝은 밤이었다. 나는 바깥으로 뛰쳐나가 둥근 달을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눈물을 흘리며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무엇을 기도했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기도를 마치고 일어서려 하니 무릎이 저려 제대로 일어설 수 없었다. 무릎이 닿은 자리의 눈은 녹아 차갑게 얼어 있었다. 그때 길 쪽에서 자동차 불빛이 번쩍였다. 불빛은 우리가 있는 쪽으로 꺾어 들어왔다. 나는 급히 큰아이를 불러 도망치자고 했다. 아이의 손을 잡고 뒷산 언덕으로 달렸다. 개까지 우리를 따라왔다. 집이 보이는 언덕 뒤 큰 나무 아래에 엎드려 집 쪽을 주시했다. 우리가 엎드리자 개도 덩달아 엎드렸다. 잠시 뒤, 그녀를 호송해 갔던 차들이 두 시간 만에 다시 들이닥쳤다. 조선족이 나가 맞았지만 군인들은 그를 무시한 채 집 안팎과 헛간, 외양간, 심지어 낟알더미까지 샅샅이 수색했다. 엎드려 있던 개가 전조등을 향해 짖자 나는 녀석의 뒤통수를 눌러 “조용히 해.” 하고 속삭였다. 개는 잠잠해졌다. 전조등이 여러 번 우리가 있는 쪽을 비췄지만 거리가 있어 그냥 스치고 지나갔다. 결국 군인들은 철수했다. 잠시 후 차가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그녀와 작은아이도 함께 내렸다. 작은아이는 “형님아, 형님아!” 하고 울부짖었다. 장교 하나는 아이에게 계속 소리쳐 부르라 시켰고, 그녀는 동복을 입은 채 산쪽을 바라보며 침묵했다. 큰아이가 벌떡 일어나려 하자 나는 그의 목덜미를 눌러 앉히며 “가면 안 돼. 엎드려 있어.” 명령하듯 말했다. 잠시 후 수색하던 군인들에게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 차는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조선족은 내려오라고 손짓했다. 그는 기도에 응답이 왔다며 기뻐했다. 한 사람당 만 위안을 내면 북송시키지 않고 돌려보내주겠다고 약속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내가 받을 돈 이만 위안으로 그들부터 살리자고 했다. 그리고 남은 돈 중 일부는 한국으로 갈 여비로 쓰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2010년 12월 30일 밤은 지나갔다. 하지만 나는 한순간도 잠들 수 없었다. 31일 아침, 언제 닥칠지 모를 위기에 대비해 다시 뒷산으로 올랐다. 낮 두 시까지 아무 소식이 없자 조선족에게 전화를 했다. 아직 돈이 입금되지 않아 넘겨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먼저 연길로 가라고 했다. 돈이 들어오면 그녀와 아이를 데리고 뒤따라오겠다고 했다. 믿든 믿지 않든 그 상황에서 선택지는 없었다. 나는 그의 말대로 움직였다. 그렇게 연길에 도착했고,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사연 많은 탈북자들이 그날 밤, 같은 공간에 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