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우리만의 섬, 너와 나

서연과 준호는 서로에게 깊이 빠져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함께 웃고 이야기하며 둘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친구 박지민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다가와 현실적인 조언을 건네지만, 서연은 이미 준호에게 맹목적으로 빠져들어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우리는 달라. 우리 사랑은 특별해.” 서연은 그렇게 믿는다. 다른 누구도, 어떤 현실적인 문제도 그들의 뜨거운 사랑을 방해할 수 없다고 확신한다. 함께 영화를 보고, 밤새 통화하며, 서로의 모든 것을 공유하는 것이 그들의 세상 전부가 된다. 친구들과의 약속도, 학업도 뒷전으로 밀려나고, 오직 준호와의 시간이 가장 소중한 순간이 된다.

6 min read

우리 둘만의 섬. 세상의 소음은 닿지 않는, 오직 너와 나만이 존재하는 그곳. 고등학교 복도를 걷는 내 발걸음은 늘 가벼웠다. 이유는 단 하나, 교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너 때문이었다. 네 환한 미소는 햇살보다 눈부셨고, 네 목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우리는 마치 운명처럼 서로에게 이끌렸고, 그렇게 우리는 둘만의 작은 섬에 발을 디뎠다.

“서연아, 이준호 너 좋아해?”

절친 지민이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이라기보다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듯한, 혹은 나를 떠보려는 듯한 뉘앙스가 섞여 있었다. 지민이는 내 옆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신나서 방방 뛰었을 나였지만, 그때의 나는 이미 이준호라는 거대한 우주에 갇혀 있었다.

“응, 좋아해.”

나지막이 대답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이준호가 나를 좋아하다니. 그 잘생기고, 다정하고,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어 보이는 이준호가. 그 생각만으로도 세상은 온통 핑크빛으로 물드는 듯했다.

“근데… 서연아. 너 요즘 너무 준호한테만 빠져 있는 거 아니야?”

지민이의 말은 마치 찬물처럼 차갑게 다가왔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야?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것뿐인데.”

“아니, 그게 아니라… 학교생활도 좀 하고, 친구들도 좀 만나고 그래야지. 너 요즘 우리랑 약속도 다 취소하고, 맨날 준호랑만 붙어 다니잖아.”

지민이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함께 약간의 서운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내 머릿속은 온통 이준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우리는 달라. 우리 사랑은 특별해.”

나는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우리는 다른 연인들과는 다르다고. 우리의 사랑은 세상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하고 순수한 것이라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나 조언 따위는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그날 이후, 우리는 더욱더 깊은 우리만의 섬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이면 몰래 만나 손을 잡고 학교 뒤뜰을 걸었고, 수업이 끝나면 곧장 만나 함께 집으로 향했다. 서로의 집에서 숙제를 하거나, 아니면 그냥 말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밤이 되면 우리는 전화기에 매달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했다. 오늘 있었던 사소한 일부터, 내일 하고 싶은 일, 그리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미래에 대한 막연한 꿈까지.

“준호야, 나 너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어느 날 밤, 나는 전화기 너머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도 그래, 서연아. 너 없이는 하루도 못 살아.”

준호의 목소리는 달콤했고, 나는 그 말에 온 마음을 녹여버렸다. 우리의 사랑은 영원할 거라고, 그 누구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친구들과의 약속은 점점 줄어들었다. 지민이가 몇 번이고 연락해 왔지만, 나는 “오늘은 준호랑 약속이 있어”라는 말로 둘러대기 일쑤였다. 학교 공부는 뒷전이 되었다. 시험 성적은 계속해서 떨어졌고, 선생님께서는 나를 따로 불러 주의를 주셨지만, 나는 그저 건성으로 듣고 넘길 뿐이었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이준호와의 시간이었다.

“서연아, 너 정말 괜찮은 거야?”

어느 날, 지민이가 다시 나를 붙잡고 물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가득했다.

“응, 왜? 나 아무렇지도 않아.”

나는 애써 밝게 웃었다.

“아니, 요즘 네가 너무 준호한테만 올인하는 것 같아서. 나중에 후회할까 봐 그래.”

“후회? 내가 왜 후회해? 준호랑 나랑은 진짜 사랑하는 사이라고. 너도 알잖아.”

“알긴 하는데… 그래도 세상에는 사랑 말고도 중요한 게 많잖아. 네 미래라든지… 아니면 우리 같은 친구라든지.”

지민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말을 끊었다.

“나한테는 준호가 전부야. 준호만 있으면 돼.”

내 목소리는 단호했다. 지민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나는 그런 지민이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쳤다.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준호가 세상의 전부였으니까.

그때, 내 곁을 지나던 최민준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늘 그랬듯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뭔가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는 듯했지만, 나는 그저 무심하게 지나쳤다. 나는 오직 이준호만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최민준이 나를 오래전부터 좋아해 왔다는 사실조차 나는 알지 못했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늦은 밤, 텅 빈 영화관에서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영화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네가 내 어깨에 기대 잠든 모습을 보며,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네 숨소리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세상의 전부였다.

“준호야, 우리 졸업하고도 계속 볼 수 있지?”

나는 영화가 끝나고 어두운 길을 걸으며 물었다.

“그럼, 당연하지. 우리는 평생 함께 할 거잖아.”

준호는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의 말에 나는 안심했고, 우리의 미래는 찬란하게 빛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리는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우리의 사랑은 그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우리는 점점 더 우리만의 섬에 갇혀갔고, 그 섬은 점점 더 견고한 벽으로 둘러싸였다. 우리는 세상과 단절되었고, 세상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 날, 지민이가 나를 찾아왔다. 그녀의 얼굴은 평소보다 더 심각해 보였다.

“서연아, 너 정말 큰일 났어.”

“무슨 일인데 그래?”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지민이를 바라보았다.

“준호… 준호가 이번 수능에서 완전히 망쳤대. 점수가 너무 안 나와서… 정시로는 갈 수 있는 대학이 거의 없다고 하더라고.”

지민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숨을 멈췄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이준호가 수능을 망쳤다고? 그럴 리가 없어. 그는 나처럼 공부에 소홀하지 않았고, 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니까.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분명 뭔가 착오가 있을 거야.”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서연아. 내가 직접 들었어. 준호가… 너무 불안해하면서 엄마한테 전화하는 거 봤어.”

지민이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나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아니야, 아니라고. 이건 현실이 아니야.

그날 이후, 우리의 세상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준호는 더 이상 예전처럼 나를 만나주지 않았다. 그는 불안해했고, 초조해했고, 무엇보다 나를 피했다. 나는 그런 준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와 함께라면 괜찮을 거라고, 우리의 사랑이 그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준호야, 왜 그래? 나한테 말해봐.”

나는 준호의 집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는 힘없이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서연아… 나… 너무 힘들어.”

준호의 목소리는 지쳐 보였다.

“뭐가 힘든데? 내가 옆에 있잖아. 같이 이겨내자.”

나는 그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그는 내 손을 뿌리쳤다.

“아니, 서연아. 너는 몰라. 내가 얼마나… 얼마나 지금 상황이 절망적인지.”

“그래도… 우리 함께잖아.”

“함께? 지금 우리는 함께가 아니야, 서연아. 나는… 나는 이제 너랑 상관없는 다른 길을 가야 할지도 몰라.”

준호의 말은 나에게 비수처럼 꽂혔다. 상관없는 다른 길? 그게 무슨 뜻이야. 우리는 평생 함께 하기로 했잖아.

“무슨 소리야, 준호야. 우리 약속했잖아. 평생 함께 하기로.”

내 목소리가 떨렸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미안해, 서연아. 내가… 내가 너한테 너무 큰 상처를 준 것 같아. 하지만… 나는 이제 너랑 더 이상 이렇게는 못 하겠어.”

준호는 그렇게 말하고는 뒤돌아섰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점점 작아졌고, 마침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마치 내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그날 이후, 이준호는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그를 아무리 찾아도 만날 수 없었다. 그는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그렇게 내 삶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텅 비어버린 세상 속에서 홀로 남겨졌다.

지민이는 내 곁을 묵묵히 지켜주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안아주었고, 내가 울 때까지 함께 울어주었다. 그녀의 따뜻한 품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얼마나 현실을 외면했는지 깨달았다.

우리만의 섬은 그렇게 부서졌다. 단단해 보였던 그 섬은 사실 모래성처럼 위태로웠고, 현실이라는 파도 앞에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뒤늦게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망가진 성적, 멀어진 친구들, 그리고 무엇보다 부서져 버린 나의 사랑.

그 후로 몇 년이 흘렀을까. 나는 어른이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며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가끔씩, 아주 가끔씩, 그 시절의 준호가 떠올랐다. 별빛 쏟아지던 밤, 그의 환한 미소, 그리고 우리의 뜨거웠던 사랑.

어느 날 밤, 나는 홀로 공원을 걷고 있었다. 차가운 밤공기가 뺨을 스쳤다. 문득, 나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별들 사이에서 나는 누군가를 보았다. 익숙한 뒷모습이었다.

“준호야…”

나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예전과 같았지만,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우리는 한참 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우리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것은 나의 마음속에, 나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라는 것을.

별빛 아래, 너를 만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