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제3장: 얄미운 옛 여친의 등장?
전헌 앞에 나타난 광적인 집착녀, 천백화. 세계관 최강의 마교 천마인 그녀는 전헌에게 결혼을 요구하며 귀찮게 한다. 전헌은 과연 그녀를 피해 갈 수 있을까?
제3장: 얄미운 옛 여친의 등장?
“하아, 진짜 뭐라도 좀 재밌는 일 없나?”
동굴 안에서 뒹굴거린 지 사흘째다. 볕이 잘 드는 동굴이라 잠시 쉬어가기엔 나쁘지 않았지만,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간만에 맑은 날씨를 즐기려 했더니만,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꼼짝없이 갇혀버렸다. 빗소리마저 지루하게 느껴지는 건 오랜만이었다.
“이럴 때 신선이라도 돼서 구름 타고 슝 날아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면… 뭐, 산신령이라도 돼서 호랑이 타고 휙!”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신선이 되려면 수행을 해야 하는데, 그건 또 얼마나 귀찮은 일인가.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그냥… 한량 도사. 의욕도, 목표도 없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게 내 팔자였다. 가끔 재능이 아깝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뭘 어쩌라는 건지. 재능이 있으면 뭐하나, 그걸 써먹을 이유가 없는데.
“아, 배고프다.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까.”
동굴 안에는 다행히 미리 챙겨둔 건빵 몇 개와 말린 과일이 있었다. 이걸로 끼니를 때우긴 했지만, 따뜻한 국물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빗소리가 잦아들고, 희미한 햇살이 동굴 입구를 비추기 시작했다.
“오, 비가 그쳤나 보네.”
나는 잽싸게 동굴 밖으로 나섰다. 젖은 풀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니 기분이 좀 나아지는 듯했다.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할 시간이었다. 어디로 갈까. 새로운 마을? 아니면 산속 깊은 곳?
“어디든 좋지 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숲길은 축축했지만,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평화롭고, 지루한.
그때였다. 숲 저편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가 나의 귀를 잡아끌었다. 꺄아악! 하는 비명과 함께,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어라? 무슨 일이지?”
이런, 또 사건에 휘말릴 운명인가. 나는 왠지 모를 호기심에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숲을 헤치고 나아가자, 작은 공터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 이게 무슨 꼴이야?”
공터 중앙에는 웬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옷은 찢어져 있었고, 얼굴에는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다. 그의 옆에는… 붉은 옷을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고, 핏빛처럼 붉은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났다. 그녀의 손에는… 피 묻은 검이 들려 있었다.
“누, 누구냐! 감히 천마를 알현하는데!”
붉은 옷의 여자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천마? 설마, 마교의 천마?
“아, 안녕하세요. 저는 그냥 지나가던… 음, 한량 도사 전헌이라고 합니다.”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인사했다. 물론, 내 안의 장난기가 슬슬 발동하기 시작했지만.
“한량 도사? 흥! 네까짓 것이 감히 나를 막아설 수 있을 것 같으냐!”
천마는 마치 세상 모든 것을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그녀의 기세에 압도당할 법도 했지만, 나는 오히려 더 흥미로워졌다.
“막아설 생각은 없는데요. 그냥… 좀 시끄러워서 와봤습니다. 저기 쓰러진 분은… 혹시 동료분이신가요?”
“동료? 웃기지 마라! 저자는 마교에 반기를 든 배신자일 뿐이다! 내가 직접 심판하는 중이었으니, 네놈은 끼어들지 마라!”
천마는 검을 치켜들며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발걸음 하나하나에 땅이 울리는 듯했다.
“아, 그러시군요. 배신자는 심판해야죠. 당연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슬쩍 그녀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어딘가… 익숙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헌데, 그쪽 분… 혹시…?”
“내 이름은 천백화다! 마교의 천마, 천백화라고!”
천백화. 그 이름에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천백화… 그 얄미운 옛 여친… 아니, 옛 연인이자, 내가 피하려 애쓰는 그 여자였다.
“천백화… 라니.”
내 목소리가 떨렸다. 세상에 이런 우연이 있나. 내가 아무리 운이 없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나쁠 수는 없었다.
“왜? 내 이름 듣고 놀랐느냐? 혹시… 나를 잊은 것은 아니겠지?”
천백화의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났다. 그녀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니, 뭐… 잊을 리가요. 하하.”
나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려 했다. 왜 하필 지금, 이 시점에 나타난 거야. 그것도 하필이면 이런 상황에서!
“그래, 잊었을 리가 없지. 네놈은 나를 결코 잊을 수 없을 테니까.”
천백화는 나에게 성큼 다가왔다. 그녀의 향기가 훅 끼쳐왔다. 달콤하면서도… 어딘가 위험한 향기.
“저기, 천백화 씨. 물론 반갑지만, 지금은 좀… 바쁜 일이 있어서.”
“바쁘다고? 뭐가 바쁘다는 거냐! 네놈이 나를 피해 도망 다닌 건 대체 몇 년이냐! 이제 도망칠 곳은 없다, 전헌!”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공터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이미 도망쳐 버렸는지, 숲은 다시 고요해졌다. 오직 우리 둘만이 남아,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천백화 씨, 진정해요. 내가 왜 당신을 피해 다녔는지 잊었어요?”
“잊다니! 네놈이 나를 버리고 도망쳤기 때문이잖아! 내가 얼마나 슬펐는지 알아?”
“슬펐다고? 당신이 나한테 했던 짓을 생각하면….”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세계관 최강이라는 마교의 천마였다. 아름답고, 신비로우며, 무엇보다… 나를 향한 집착이 광적이었다. 처음에는 귀엽다고 생각했지만, 그 집착은 점점 더 심해졌고, 나는 결국 그녀를 피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나는 이제 네놈과 함께 할 거야. 결혼할 거다!”
“뭐라고? 결혼? 당신 미쳤어요?”
“미쳤다고? 아니! 네놈을 너무 사랑해서 그래! 네놈 없이는 살 수 없어!”
천백화는 거의 달려들 기세로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재빨리 그녀를 피해 옆으로 굴렀다.
“잠깐만요! 진정해요! 우리… 우리 헤어졌잖아!”
“헤어졌다고? 누가 헤어졌다는 거야! 네놈이 일방적으로 도망친 것뿐이잖아!”
그녀는 분노에 찬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검이 번뜩였다.
“좋아, 알겠어. 그럼 이렇게 하자.”
나는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그녀를 달래기 시작했다.
“지금은 당신이 말하는 대로, 내가 당신을 버리고 도망친 거야. 그러니까… 이번에는 당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하지만….”
“하지만…?”
천백화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지금은 좀… 곤란한 상황이야. 저기 쓰러진 분도 있고, 아무래도….”
“저자는 신경 쓰지 마! 저자는 내 알 바 아니야!”
“아니, 그래도…. 아무튼, 내가 당신의 마음을 받아줄게. 그러니까… 일단은….”
나는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어갔다.
“일단은… 우리, 천천히 다시 시작해 보는 건 어때? 결혼은… 나중에.”
“결혼은 나중에?”
천백화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녀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정말이야? 나를 다시 받아주는 거야?”
“음… 받아주는 거지. 뭐.”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든 모면해야 했다.
“정말이라면… 정말이라면 좋다! 그럼 일단… 저자를 처리하고…!”
천백화는 신이 나서 외쳤다. 그러더니 쓰러져 있던 남자에게 다가가 검을 휘두르려 했다.
“잠깐만요!”
나는 그녀의 팔을 덥석 잡았다.
“그건 좀…. 그래도 죽이는 건 좀 그렇잖아.”
“뭐라고? 네놈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거냐!”
“아니, 그러니까…. 저 사람도 사연이 있을 거 아니야. 일단은….”
나는 다시 한번 그녀를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천백화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됐어! 네놈이 그렇게 말하니, 이번만은 봐주겠다!”
그녀는 콧방귀를 뀌며 쓰러진 남자를 발로 툭 찼다.
“일어나라! 그리고 다시는 마교에 반기를 들지 마라!”
쓰러져 있던 남자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는 천백화를 힐끔 쳐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숲 속으로 사라졌다.
“저… 저런 식으로 보내도 괜찮아요?”
“괜찮아! 어차피 저자는 나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해!”
천백화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다시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 이제 네놈 차례다! 나에게 약속한 대로, 나를 다시 받아주는 거지?”
“아… 네. 뭐… 받아주죠.”
나는 결국 그녀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나를 소유물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좋아! 그럼 당장 결혼식을 올리자!”
“뭐라고? 결혼식? 지금 당장?”
“그래! 네놈이 나를 받아준다고 했으니, 바로 결혼해야지!”
천백화는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잠깐만요! 결혼은… 결혼은 좀 더 천천히….”
“싫어! 지금 당장이야!”
그녀는 내 손을 덥석 잡고 끌기 시작했다. 그녀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나는 그녀에게 끌려가면서도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천백화 씨! 잠깐만요! 나중에… 나중에 하면 안 될까요?”
“안 돼! 지금 당장이야! 너는 내 것이 될 테니까!”
그녀는 나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나를 끌고 갔다. 나는 그녀에게 끌려가면서도 생각했다.
‘아, 망했다. 진짜 망했어. 이 여자한테서 벗어날 방법이 없나?’
그녀는 마교의 천마였다. 세계관 최강이라고 불리는 여자. 그런 그녀의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제발… 제발 좀 멈춰요!”
나는 소리쳤지만, 천백화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끌고 숲 속 깊은 곳으로 향했다. 나는 그녀에게 끌려가면서도, 저 멀리 보이는 익숙한 산의 봉우리를 바라보았다.
‘혹시… 남궁극… 네가 나를 구해줄 수 있을까?’
남궁극. 나의 유일한 친구. 백도의 검성이자, 정의로운 녀석. 하지만 지금은… 너무 멀리 있었다.
“전헌! 내 사랑! 이제 우리 영원히 함께야!”
천백화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하아, 진짜… 얄미운 옛 여친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람.’
나의 중원 방랑기는, 또다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