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진실을 향한 답답함
화자는 고향의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진정한 삶의 본능을 찾아주고자 하지만, 정부의 탄압과 사회의 침묵에 가로막혀 답답함을 느낀다. 이길원 시인의 말처럼 감옥의 문은 바깥에서만 열 수 있는데, 왜 진실을 알리려는 시도가 억압받아야 하는지 의문을 품는다.
그곳, 내 고향의 사람들은 여전히 당과 수령을 외치며, 사회주의를 굳건히 지켜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붉은 깃발이 펄럭이는 광장에서, 혹은 낡은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지는 구호 속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듯 보였다. 텔레비전에서는 연일 위대한 지도자의 업적과 사회주의의 승리를 찬양하는 소식들이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그 소식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고 박수를 쳤다. 그들의 얼굴에는 굳건한 신념과 자부심이 어려 있었다.
하지만 그 굳건함 뒤편으로, 나는 그들의 눈빛 속에 숨겨진 막연한 갈망을 보았다. 마치 깊은 밤, 캄캄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 하나를 찾으려는 아이처럼, 그들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무언가를 원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자유’라는 단어로만 어렴풋이 표현될 수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느끼는 무언가일 터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철창 속에 갇힌 새와 같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아니, 인지하려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저 주어진 틀 안에서, 주입된 사상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었을 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명확히 알지 못했다. 그저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설명하기 어려운 답답함과 해소되지 않는 갈증을 느낄 뿐이었다. 그것을 ‘자유’라 부를 수도, ‘행복’이라 명명할 수도 없었다. 그저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본능적인 무언가, 그 존재조차 희미한 무언가를 향한 막연한 동경이었다. 그리고 그 동경은 종종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갔다.
어떤 이들은 그 막연한 갈망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려 했다. 조금 더 나은 삶, 조금 더 넓은 세상을 꿈꾸며 작은 목소리라도 내보려 했던 이들. 하지만 그들의 작은 날갯짓은 곧 거센 폭풍에 휩쓸렸다. 그들이 꿈꾸던 자유는 오히려 그들을 더 험한 감옥으로 몰아넣었고, 쇠사슬로 꽁꽁 묶인 채 차가운 형장으로 끌려갔다. 자신들이 대체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가 오히려 죽음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그들은 그렇게 스러져갔다. 핏기 없는 얼굴로, 억울함과 의문만을 가슴에 품은 채.
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내가 떠나온 고향,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 그곳은 붉은 구호와 굳건한 신념 뒤에 숨겨진, 차가운 폭력과 억압의 땅이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인간으로서 당연히 원하는 자유를 갈망했을 뿐인데, 왜 그들은 쇠고랑을 차고 죽음의 문턱으로 내몰려야 하는가. 그 질문은 메아리 없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이길원 시인은 ‘감옥의 문은 바깥에서만 열 수 있다’고 했다. 옳은 말이었다. 갇힌 자는 스스로 문을 열 수 없다.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나는, 혹은 우리와 같이 고향을 떠나온 이들은, 고향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그들이 진정한 삶의 본능을 찾아 나설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 아닐까. 억압된 현실 속에서 숨 막혀 하는 그들에게, 희미한 빛이라도 비춰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내가 고향에 대해, 그곳 사람들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하려 할 때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정부의 탄압은 집요했고, 진실을 알리려는 작은 시도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오히려 ‘체제 전복 세력’으로 몰리거나, ‘유언비어를 퍼뜨린다’는 비난을 받기 일쑤였다.
더욱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그 탄압보다 더 깊고 짙은 침묵이었다. 고향 사람들은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침묵했다. 아니, 어쩌면 잘못된 것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진실을 향한 갈망보다는, 익숙한 현실에 안주하려는 마음이 더 컸던 것일까. 아니면 진실을 마주했을 때 닥쳐올 거대한 파도를 두려워했던 것일까. 그들의 침묵은 나를 더욱 고립시켰고, 나의 외침을 더욱 공허하게 만들었다.
나는 답답함에 몸부림쳤다. 마치 좁은 방에 갇혀 숨쉬기 힘든 것처럼, 진실을 외면하는 현실 속에서 나는 질식할 것만 같았다. 감옥의 문을 열기 위해선 바깥에서 누군가 밀어주어야 하는데, 그 바깥의 나는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다. 나의 목소리는 너무 작았고, 나의 영향력은 미미했다.
그때, 문득 귓가에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들어왔다. 국민 가수 나훈아의 노래였다.
“꿈을 실은 작은 배, 고향으로 갑시다. 산과 산이 마주쳐 우는 동산에 꿈을 싣고 갑시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차올랐다. 노래는 나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억압과 침묵으로 얼룩진 현실에서 벗어나, 내가 꿈꾸던 고향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보고 싶었다. 산과 산이 마주쳐 깊은 골짜기를 이루고, 그곳에서 푸른 나무들이 싱그러운 숨을 내쉬던 그곳. 하지만 이제는 그곳에 붉은 깃발 대신 푸른 희망이 펄럭이기를, 억압적인 구호 대신 자유로운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노래는 나에게 다시 한번 용기를 주었다. 비록 지금은 정부의 탄압과 사람들의 침묵이라는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 답답함을 느끼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고, 자유를 향한 인간의 본능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을 붙잡고, 나는 다시 한번 나의 고향을 향해 나아가야 했다. 꿈을 실은 작은 배에 희망을 싣고, 나의 고향으로.
하지만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여전히 험난해 보였다. 고향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린 체제에 대한 충성심과, 진실을 마주했을 때 겪게 될 혼란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 진실을 은폐하고 억압하려는 정부의 강력한 힘. 나는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잿빛 하늘 아래, 삭막한 도시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고향의 푸른 산과 맑은 시냇물이 그리웠다. 사람들의 얼굴에 피어나는 진정한 웃음이 그리웠다. 나는 다시 한번 나훈아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꿈을 실은 작은 배, 고향으로 갑시다.”
그 노래는 단순한 희망가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에게 주어진, 혹은 내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사명과도 같았다. 언젠가는 꼭, 그 꿈을 싣고 나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그곳에서, 억압과 침묵 대신 진실과 자유가 꽃피는 세상을 만들 수 있기를. 나의 작은 날갯짓이, 언젠가는 거센 바람이 되어 고향의 닫힌 문을 활짝 열 수 있기를.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답답함 속에서도, 희미한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