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총성으로 잠재운 저항
체제 붕괴 위기 속에서 시작된 공포 정치.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나든 이들을 '배신자'로 몰아 처벌하고, 돈과 권력 없는 백성들을 총살하며 '한 사람을 죽여 백 사람을 통제'하는 악랄한 방식이 자행되었다.
총성이 울려 퍼지던 그때, 고향 땅은 마치 맹수의 포효처럼 으르렁거렸다. 체제 붕괴의 위기 앞에서 권력자들이 꺼내 든 비장의 무기는 바로 공포였다.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라는 구호 아래, 그들은 자신들의 죄악을 덮기 위해 무고한 백성들을 제물로 삼았다. 먹고살기 위해, 단 한 줌의 쌀이라도 얻기 위해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었던 이들은 순식간에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그들이 힘들게 벌어온 얼마 안 되는 돈마저 모조리 빼앗기고, 노동교양대와 노동교화소로 끌려가 짐승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권력은 더 잔인한 방법을 택했다. 돈도, 권력도, 아무런 힘도 없는 백성들이 그들의 분노를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총구가 겨눠졌고, 억울한 죽음들이 이어졌다. ‘한 사람을 죽여 백 사람을 통제한다.’ 그것이 그들의 방식이었다. 주모자는 따로 있건만, 가장 약한 고리, 가장 쉬운 희생양이 그들의 총칼 앞에 쓰러져 갔다. 사형당한 자의 사돈의 팔촌까지 끌어내 정치범으로 몰거나, 변방으로 추방 보내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조국이 어려울 때 함께하지 않고 저들만 살겠다고 나라 망신시킨 자들”이라는 더러운 오명을 씌워, 자신들의 추악한 죄악을 총성으로 덮어버렸다.
돈과 권력이 없는 백성들은 그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다. 두만강을 넘지 않으면 굶어 죽을 판이었고, 넘으면 배신자가 되어 죽임을 당하는 진퇴양난의 늪이었다. 반면에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배부른 돼지처럼 살이 올랐고, 돈에 눈이 멀어 세상 돌아가는 줄도 몰랐다. 한국 드라마 같은 자본주의 녹화물을 보며 딴 세상을 꿈꿨지만, 그들의 죄악마저도 힘없는 백성들에게 뒤집어씌웠다. 희생양은 언제나 돈도 권력도 없는, 그저 무지렁이 같은 백성들이었다.
어머니는 병신 자식 탓하지 않고, 죄지은 자식 나무라지 않는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는 것이 바로 어머니의 숭고한 마음이다. 그런데 내가 바깥에서 바라본 고향 땅은, 그 어머니의 마음과는 너무도 달랐다. 마치 못된 계모처럼,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했고, 아무것도 없는 백성들에게는 무자비했다. 위로는 아부하고, 아래로는 폭군을 부리는, 말 그대로 봉건 왕족 국가 그 자체였다.
다섯 손가락을 깨물어 보아도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어디 있으랴. 하물며 ‘어머니당’이라 불리는 나의 고향에서, 자식 같은 백성을 그렇게 무자비하게 죽이는 어머니당, 어머니 조국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그저 김정일이 백성들에게 아주 작은 자유만 허락했더라도, 3~4백만이 넘는 백성들이 굶어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총성이 울려 퍼지고 공포 정치가 시작된 후, 잠시 동안은 고향 땅에 정적이 깃드는 듯했다. 체제가 바로 서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 힘 없는 백성들은 침묵으로 저항했다. 그리고 그들의 가장 큰 저항은 바로 ‘탈북’이었다. 김정일 독재 정권에 맞서 가장 큰 용기와 결단을 내린 사람들이 바로 탈북민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늘 자랑스럽다. 자신들의 고향 땅에서 부모 형제 자식들이 굶어 죽고, 집까지 빼앗기고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사람들. ‘어머니당, 어머니 조국’이라 부르는 그 정권, 그 땅마저 외면해 버린 사람들이 바로 탈북민들이었다.
“나라 없는 자 상갓집 개보다 못하다”는 속담이 있다. 단지 먹고살기 위해 두만강을 넘었건만, 그들은 ‘불법 월경자’라는 딱지가 붙었다. 여자들은 불법 인신매매와 강제결혼의 덫에 걸렸고, 남자들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 죽도록 일하고도 돈 한 푼 받지 못했다. 탈북민이라는 이유로 신고를 당해 북송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인간 이하의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돈도 권력도 없어 고향 땅에서도, 타국에서도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인생의 모든 풍파를 겪으며 이겨냈다.
탈북민들이 바라본 그 땅은 과연 어린 시절부터 불러왔던 ‘어머니당, 어머니 조국’이었을까? ‘어머니’라는 그 이름만 불러도 눈물이 앞서고, 친근하게 느껴지던 나의 고향이었을까? 바깥에서 바라본 나의 고향은, 한마디로 보이지 않는 철창으로 막힌 거대한 감옥일 뿐이었다. 그곳에서 내 부모 형제 자식이기 전에, 우리와 똑같은 2천 5백만의 사람들이 김정은 일가를 위해 신음 소리 한마디 제대로 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감옥의 문은 바깥에서만 열 수 있다. 그 열쇠를 여는 사람들은 바로 자유를 누리고 있는 세계의 선량한 사람들이 한목소리를 낼 때인 것이다. 그 목소리가 모여, 언젠가는 고향 땅의 보이지 않는 철창을 부수고, 2천 5백만의 사람들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