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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어버이 수령님의 품에서

어린 시절, '어버이 수령님'이라 불리는 김일성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속에서 행복한 나라라 믿었던 고향. 흰쌀밥과 고기국, 비단옷과 기와집에 대한 약속은 민족의 숙원처럼 세뇌되었다. 하지만 그 이면의 진실은 감춰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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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우리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김일성 동지를 ‘어버이 수령님’, ‘우리 어머니 조국’이라 배우고 불렀다. 마치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엄마 품에 안기듯, 우리는 수령님의 품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자란다고 믿었다. 수령님께서 평생의 소원이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이고, 비단옷을 입혀 기와집에서 살게 하는 것이라 하셨으니, 삼대 세습으로 이어지는 그 약속은 우리 민족의 오랜 숙원이자 꿈이었다.

하지만 그 꿈은 마치 신기루 같았다. 같은 민족이 사는 한강토의 절반 땅, 남쪽 나라에서는 반세기라는 짧은 시간 안에 그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의 어머니 조국은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지금은 김정은까지 삼대에 걸쳐 이어졌지만, 민족의 숙원이라는 숙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수령님의 유훈을 관철한다며, 우리는 죽지 않을 만큼의 식량만 받은 채 2천 5백만 노예가 되어버렸다.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라는 구호 아래 세뇌된 우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닌, 봉건 왕족 국가의 백성이 되어버린 것이다. 신발 한 켤레, 옷 한 벌, 심지어 된장과 간장까지 모든 기본 생활필수품이 국가의 공급체계 안에서만 돌아갔고, 그 체계는 마치 개를 훈련시키듯 우리를 노예로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1994년 김일성이 눈을 감기 전부터 우리의 땅은 식량난으로 허덕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6년, 3백만에서 4백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굶주림에 쓰러져갔다. 대량 아사 사태라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 ‘어버이 수령’, ‘위대한 령도자’라 자칭하는 자들은 ‘수령님께서 일제를 쳐 물리치실 때 한 홉의 미시가루로 고난을 이겨냈다’며, 지금은 ‘미제국주의자들과 그 앞잡이 남조선 괴뢰도당들 때문에’ 항일의 그 시기처럼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한다고 우리를 세뇌시켰다. 공급체계가 무너져 아무것도 공급되지 않는 상황을,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미제국주의 탓으로 돌리며 책임을 전가한 것이다.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라는 허황한 거짓말과 함께, 미제국주의와 홀로 싸우는 ‘김정일 장군님’은 줴기밥과 쪽잠으로 전선을 오가고 계신다며, “장군님은 전선으로, 아이들은 야영소로”라는 노래까지 만들어 우리를 세뇌시키는 데 올인했다. 거기에 ‘당신이 없으면 조국도 없다’는 얼빠진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가 지은 노래를 전국이 따라 배우는 운동까지 벌였다. 청년들에게는 ‘당과 수령을 결사옹위하는 총폭탄’이 되라는 구호까지 만들어 세뇌시켰다.

굶어 쓰러져 가는 백성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인민들의 모습에서 체제 붕괴의 위험성을 감지한 정권은 ‘선군 정치’를 내세우며 공포 정치를 시작했다. 자본주의 사상을 ‘황색 바람’에 비유하며 “검은 구름 몰아쳐도 붉은기 높이 들고 사회주의 지키자”를 외쳤지만, 먹고살기 위해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나드는 사람들을 ‘당과 조국, 수령과 인민을 망신시킨 배신자’라 몰아붙였다. 그들이 벌어온 돈은 모조리 빼앗고, 노동교양대와 노동교화소로 보냈다. 그래도 멈추지 않자, 돈도 권력도 없는 힘없는 백성들을 총살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을 죽여 백 사람을 통제하려는 공포 정치였다.

주모자는 따로 있었건만, 돈도 권력도 없는 무지렁이 같은 백성들이 총살당했다. 심지어 사형당한 자의 사돈의 팔촌까지 정치범으로 몰거나 추방을 보내며, “조국이 어려울 때 함께하지 않고 저들만 살겠다고 나라 망신시킨 자들”이라는 오명을 씌워 그들의 추악함을 총성으로 잠재워 버렸다. 돈도 권력도 없는 백성은 먹고살기 위해 두만강을 넘었지만, 돈 있고 권력 있는 자들은 배부르고 돈에 미쳐 한국 드라마와 같은 자본주의 녹화물을 보며 세상을 알아갔다. 하지만 그들의 죄까지 다 뒤집어쓰고 희생양이 된 것은 바로 돈도 권력도 없는 무지렁이 백성이었다.

어머니는 병신 자식 탓하지 않고 죄지은 자식 나무라지 않는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서슴없이 내놓는 것이 바로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어머니의 숭고한 정신이다. 그런데 내가 바깥에서 바라본 고향 땅은 못된 이붓엄마와 같은 심정이었다. 돈 있고 권력 있는 자들에게는 관대하고, 아무것도 없는 백성에게는 무자비했다. 위로는 아부하고 아래로는 폭군이 따로 없는, 말 그대로 봉건 왕족 국가 그 자체였다. 다섯 손가락 깨물어 어디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있으랴. 하물며 어머니당이라 부르는 내 고향에서 자식 같은 백성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그런 어머니당, 어머니 조국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으랴?

아마도 김정일이 백성들 스스로 알아서 살아갈 수 있도록 아주 작은 자유만 주었어도 3~4백만이 넘는 백성들이 굶어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총성이 울리며 공포 정치가 시작된 때로부터 당분간 정적이 깃들고 체계가 바로 서는 것 같았지만, 아무 힘 없는 백성들은 무언으로 항거했다. 힘없는 백성의 가장 큰 항거는 바로 탈북이었다. 김정일 독재 정권에 맞서 가장 큰 용기와 결단을 내린 사람들이 바로 탈북민이기에 나는 늘 탈북민이 자랑스럽다. 자신들의 고향 땅에서 두 눈 뜨고 부모 형제 자식들이 굶어 죽고 집까지 빼앗기고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사람들. 어머니당, 어머니 조국이라 부르는 그 정권, 그 땅도 외면한 사람들이 바로 탈북민이다.

“나라 없는 자 상갓집 개보다 못하다”는 속담이 있듯이, 단지 먹고살기 위해 두만강을 넘었건만 ‘불법 월경자’라는 딱지가 붙고, 여자들은 불법 인신매매와 강제결혼, 남자들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 죽도록 일하고도 돈도 못 받고 탈북민이라는 이유로 신고를 당해 북송되는 등 인간 이하의 멸시와 천대를 받았다. 돈이 없고 권력이 없어 자기들의 고향 땅에서조차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되고, 남의 나라 땅에서조차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되어 인생의 모든 풍파를 겪으며 이겨낸 사람들이 바로 탈북민들이다.

탈북민이 바라본 그 땅은 과연 어려서부터 불러온 어머니당, 어머니 조국이었을까? 어머니라는 그 이름만 불러도 눈물이 앞서고 친근한 그러한 내 고향이었을까? 바깥에서 바라본 내 고향은 한마디로 보이지 않는 철창으로 막힌 거대한 감옥일 뿐이다. 그곳에서 내 부모 형제 자식이기 전에 우리와 꼭 같은 2천 5백만의 사람들이 김정은 일가를 위해 신음소리 한마디 못 내고 살아가고 있다. 감옥의 문은 바깥에서만 열 수 있다. 그 열쇠를 여는 사람들이 바로 자유를 누리고 있는 세계의 선량한 사람들이 한목소리를 낼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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