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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2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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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연은 기회를 놓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백 나인과 함께할 수 있는 순간을 계속해서 살폈다. 그러던 어느 날, 어의가 희연의 처소에 찾아왔다.

“마마, 회임하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희연의 얼굴이 환해졌다.

“정말이냐? 내가 아이를 가진 것이냐?”

희연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어의가 이어서 꺼낸 말은 그녀의 기대와 전혀 달랐다.

“마마, 이번에 확인한 결과…… 전하의 아이가 아닌 것으로 나왔습니다.”

희연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게 무슨 말이냐?”

희연은 직접 확인해 보겠다며 결과를 받아 들었다. 잠시 뒤, 그녀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마주했다. 아이는 전하의 자식이 아니라 백 나인의 아이였다. 희연의 피와 백 나인의 피가 섞인 아이였던 것이다.

‘이 일을 전하께서 아시면 어찌 되는 거지?’

희연은 두려웠다. 이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자신과 백 나인 모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이 일은 절대 발설하지 마라. 오상궁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

희연은 어의에게 단단히 당부했다. 그리고 자신의 회임 사실을 숨겼다.

시간이 흐르면서 희연의 배는 조금씩 불러왔다. 그녀는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외출을 허락받았다. 백 나인 역시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눈을 피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아직 아이를 낳기에는 이른 시기였지만, 두 사람은 결국 아이를 낳게 되었다. 아이는 너무나 작고 여렸다.

백 나인은 갓 태어난 아이와 희연을 번갈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희연 역시 자신의 품에 안긴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토록 바라던 아이가 눈앞에 있었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 아이의 출생이 발각되는 순간, 자신과 백 나인이 어떤 벌을 받게 될지 희연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아이의 존재를 철저히 숨기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백 나인이 슬픈 얼굴로 희연을 찾아왔다.

“무슨 일이냐? 얼굴이 왜 그러느냐?”

한참을 망설이던 백 나인이 입을 열었다.

“마마…… 아이가 떠났습니다.”

그 말을 들은 희연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뭐라고……?”

희연은 세상이 무너진 듯 엉엉 울었다. 백 나인도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얼마 뒤, 백 나인은 집안의 문제에 휘말려 궁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희연은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이제 나는 누구와 함께해야 하지?’

희연은 외로웠다. 하지만 그 외로움을 달래려는 방법은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헌이에게 화풀이하기 시작했다.

“헌아, 이리 오너라.”

“예, 어머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거라.”

희연은 헌이에게 무리한 일을 시키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를 냈다.

“어머니, 이러시면 안 됩니다.”

“내가 왜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이냐? 네가 감히 어머니의 말을 거역하겠다는 것이냐?”

희연은 목소리를 높였다. 헌이는 어머니가 무서웠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그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희연은 또다시 헌이를 찾아가려 했다. 하지만 마침 전하께서 오시는 날이었다. 그녀는 급히 마음을 가다듬었다.

헌이는 어머니의 기분을 살피며 조용히 지냈다. 오상궁 역시 헌이의 편이 되어 주지 않았다.

그런 헌이에게도 마음속에 품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중전 예름의 딸, 안이였다.

안이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닮아 무척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동생 준이 또한 훤칠하고 잘생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헌이는 그중에서도 안이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어머니 몰래 안이에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희연이 알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헌이는 꽃단장을 하고 전하께 인사를 드리러 가려 했다. 그런데 하필 그날은 대비마마의 생신이었다.

헌이는 먼저 대비마마께 인사를 올렸다.

그때 대비마마의 시선이 희연에게 향했다.

“너는 백 나인과 무슨 사이냐?”

희연은 순간 놀랐지만 곧 표정을 가다듬었다.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아무 사이도 아니옵니다.”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란 말이냐?”

대비마마는 희연을 빤히 바라보았다.

희연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대비마마가 무엇을 알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날 희연은 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는 헌이에게조차 자신의 일을 털어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친정 부모도, 전하도, 중전도 아무것도 알아서는 안 되었다.

한편, 회임 막달에 접어든 예름은 몸이 무거워져 제대로 절을 올리기조차 어려웠다.

“네가 어찌 절을 하려 하느냐. 몸부터 살피거라.”

대비마마는 예름을 걱정하며 자리에 앉도록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희연은 속으로 분노를 삼켰다.

‘어찌하여 중전에게만 저리 다정하신 것인가.’

희연은 애써 표정을 감추었다.

며칠 뒤, 희연은 누구보다 아름답게 치장했다. 반짝이는 옷을 입고 곱게 화장한 뒤 중궁전으로 향했다.

하지만 궁녀에게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마마, 전하께서 중궁전에 계시옵니다.”

희연은 잠시 망설이다 중궁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어찌 그러시옵니까?”

예름의 목소리였다.

“왜 아직도 나를 전하라고 부르는 것이냐. 혁이라고 불러 달라 하지 않았느냐.”

혁은 전하의 이름이었다.

희연은 그 말을 듣고 걸음을 멈췄다.

자신이 전하의 이름을 불렀을 때는 늘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자리를 떠나셨다. 그런데 중전에게는 직접 이름을 불러 달라고 하시다니.

“어찌 제가 감히 전하의 이름을 부르겠사옵니까?”

“내가 괜찮다 하지 않았느냐.”

두 사람 사이에는 희연이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다정하고도 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희연은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졌다.

오늘은 분명 전하께서 자신을 찾아오시는 날이었다.

그런데 예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하, 오늘은 희연이에게 가셔야 하는 날이 아니옵니까?”

전하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희연이를 한 달이나 찾아가지 못한 것도 헌이 때문이지 않느냐. 오늘은 조금 더 이곳에 있어도 괜찮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희연은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이 기다리던 하루였다. 그런데 전하는 중전의 곁에 머물고 있었다.

희연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처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헌이를 보자마자 화를 쏟아 냈다.

“너 때문이야!”

“어머니……?”

“전하께서 나를 찾아오지 않으시는 것도 전부 너 때문이라고!”

희연은 헌이에게 거친 말을 퍼부으며 매질하기 시작했다.

헌이는 영문도 모른 채 어머니 앞에 서 있었다.

‘내가 대체 무엇을 잘못한 걸까?’

헌이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저 어머니가 자신을 미워한다는 사실만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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