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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1장

한지우는 오랜만에 찾은 헌책방에서 우연히 강민혁과 재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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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손에 든 책을 놓칠 뻔했다. 낡은 표지가 미끄러지며 손끝을 스친 순간, 다른 손이 그 책을 받아냈다. 지우는 고개를 들었다. 익숙한 향수 냄새가 났다. 눈앞의 남자는 그가 아니었지만, 순간 심장이 멈추는 듯했다.

“조심하세요.”

낯선 목소리에 지우는 흠칫 정신을 차렸다. 미소를 지은 젊은 사서가 책을 건네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는 겨우 웃음을 되찾았다.

“네, 감사합니다.”

그녀는 그 시집을 오래전에 한 번 읽었었다. 이곳은 도심 한복판의 오래된 헌책방으로, 대학 시절 자주 드나들던 장소였다. 오랜만에 발길이 닿은 이유는 뚜렷하지 않았다. 그저 길을 걷다 문득 들른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책을 제자리에 꽂고 돌아서는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찬 바람이 안으로 밀려들며 종이 냄새를 흩뜨렸다. 지우는 무심코 현관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움직임을 멈췄다.

강민혁이 거기 서 있었다.

그는 지우와 같은 나이지만 11년 전 떠날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약간 구부정한 어깨, 짙은 눈썹 아래 깊이 가라앉은 눈동자. 그는 지우를 보자마자 발걸음을 멈췄다. 시간이 정지한 듯한 순간이 흘렀다.

지우는 등을 돌려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동안 쌓아온 모든 날들이 무너지는 듯했다.

“지우야.”

그의 목소리는 전보다 낮아져 있었다. 지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민혁 씨.”

그녀가 말했다. 그 호칭에 민혁의 표정이 흔들렸다. 그는 한 걸음 다가왔다.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어. 자주 오는 곳이야?”

“아니요. 그냥 지나가다가.”

지우는 손끝이 떨리는 것을 애써 숨겼다. 민혁의 시선이 그녀의 손에 들린 책으로 향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잠시 바라보았다.

“그 책은… 예전에 네가 좋아하던 시인이 쓴 거지?”

지우는 놀랐다. 그가 기억하고 있었다. 그 시를 좋아했던 이유도, 그가 처음으로 선물해 준 책이었던 것도.

“응.”

대답이 목에 걸렸다. 그녀는 책을 가슴에 꼭 안았다. 민혁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눈빛은 쓸쓸했다.

“시간 있으면 커피라도 마실래? 가까운 데 아는 카페가 있어.”

그의 제안은 가볍게 들렸지만, 지우는 그 이면에 무언가 무거운 것이 담겨 있음을 느꼈다. 그녀는 거절할 이유를 찾았다. 약속이 있다고, 바쁘다고.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달랐다.

“좋아.”

민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문 쪽을 가리켰다. 지우는 그의 뒤를 따라 걸으며 심장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밖은 이미 어둑해지고 있었다.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그가 말없이 앞서 걷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그리웠다.

카페 문을 열자 따뜻한 공기가 그들을 감쌌다. 주문을 마치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지우는 테이블 위에 놓인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잘 지냈어?” 민혁이 먼저 물었다.

“응. 그동안 많이 변했지?”

“그렇게 보이지는 않아.”

그의 말에 지우는 가볍게 웃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진지했다.

“사실, 나는 네가 보고 싶었어. 그동안 여러 번 연락하려고 했는데… 용기가 안 났어.”

지우는 숨을 멈췄다. 그가 직접 말하다니. 그녀도 같은 마음이었지만, 고백할 용기는커녕 마주할 용기도 없었다.

“왜… 그런 말을 해?” 그녀가 작게 물었다.

“더 이상 숨기고 싶지 않아서. 우리가 헤어졌을 때 난 아직 너를 사랑하고 있었어.”

민혁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지우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불빛이 반짝이는 거리가 어렴풋이 보였다.

“나도… 나도 너를 잊지 못했어.”

겨우 내뱉은 말이었다. 민혁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그럼 우리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은 단순했지만, 지우는 그 속에 지난 11년의 모든 눈물과 후회가 담겨 있음을 알았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그가 커피 잔을 쥔 손등 위에 살짝 얹었다.

“천천히 가보자. 서두르지 말고.”

민혁이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의 손은 차가웠지만, 힘이 느껴졌다.

“고마워, 지우야.”

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그간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순간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쓴맛이 혀에 감돌았다.

그때, 민혁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화면을 보고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전화를 받지 않고 끊었다.

“누구야?” 지우가 물었다.

“별거 아니야. 회사 쪽인데… 내일 얘기해도 되는 일이야.”

그의 말투가 어색했다. 지우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지만 더 묻지 않았다. 민혁이 그녀를 다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번 주말에 시간 돼? 나랑 같이 바다에 갈 수 있어?”

지우는 놀랐다. 그가 갑자기 바다라니. 그곳은 그들의 추억이 깃든 장소였다.

“왜 바다야?”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민혁의 눈빛이 진지하게 빛났다. 지우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는 아직 숨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알겠어. 주말에 보자.”

민혁이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그들은 카페를 나와 헤어졌다. 지우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계속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생각했다. 그가 다시 떠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비밀이 있는 것인지.

주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에서 모든 진실을 마주하게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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