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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7

쇼펜하우어의 재해석, 삶의 아이러니

민준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며 삶의 아이러니를 유쾌하게 받아들인다. 고통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고, 세상의 소음 속에서 자신만의 평화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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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준은 낡은 가죽 표지의 쇼펜하우어 전집을 펼쳐 들었다. 눅눅한 종이 냄새와 함께 익숙한 절망의 향기가 코를 찔렀다. “삶은 고통이다.” 그의 뇌리를 스치는 문장은 마치 오래된 빚쟁이처럼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그렇다, 삶은 고통이었다. 아니, 고통 그 자체였다. 아니, 고통이라기보다는… 지루하고 끈질긴 짜증의 연속이었다.

민준은 펜을 들었다. 침묵의 기록, 그 두 번째 여정이었다. 첫 번째 기록이 세상의 소음에 대한 분노와 환멸로 가득했다면, 이번 기록은 그 소음을 조금 더… 관조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려 했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라는 녀석이 세상 곳곳에 널브러져 얼마나 끔찍한 파티를 벌이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은 그 파티의 엑스트라로서 얼마나 어이없는 춤을 추고 있는지 말이다.

그는 커피잔을 들었다. 식어빠진 커피는 쓴맛과 함께 묘한 씁쓸함을 더했다. 사무실의 공기는 여전히 끈적했다. 오후 세 시, 나른함과 함께 피어나는 질투, 시기, 그리고 은근한 정치질의 향연. 박수현은 오늘도 민준의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저 한가한 놈, 또 뭘 꼬고 있는 거야?’라는 명백한 질문이 담겨 있었다. 민준은 짐짓 태연한 척, 보고서 내용을 곰곰이 생각하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의 맹목성’에 대해 골몰하고 있었다. 박수현의 ‘승진 의지’ 또한 얼마나 맹목적이고 우스꽝스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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