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욕심의 시작, 돈의 향기
이도현의 풍족하고 부족함 없는 삶을 보며 '저런 사람을 갖고 싶다'는 욕심이 커진다. 부잣집 딸인 나는 돈으로 그에게 다가서려 한다. 하지만 그는 돈을 밝히는 나를 경멸하며 공부로 도발한다.
만년 전교 2등. 그 수식어는 마치 내 이름표처럼 따라붙었다. 늘 1등 바로 밑자리를 꿰차고 있었지만, 그 1등이라는 존재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고 있기에 늘 나를 앞지를 수 있는지 궁금증은 가시지 않았다. 내게 부족함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금수저 중의 금수저, 뭐 하나 아쉬울 것 없이 자라왔다. 하지만 그 풍족함 속에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었고, 그 공허함을 채워줄 무언가를 나는 늘 갈망했다. 그리고 그 갈망의 대상은 바로, 전교 1등 이도현이었다.
그를 처음 제대로 보게 된 건, 정말이지 운명처럼 느껴졌다. 왁자지껄한 점심시간,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늘 단정한 교복, 흐트러짐 없는 머리카락, 그리고 무엇보다 흔들림 없는 눈빛. 그는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 같았다. 그의 주변은 언제나 고요했고, 그 고요함 속에서 그는 더욱 빛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의 완벽함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는 마치 잘 짜인 명품 시계처럼, 단 한 번의 오차도 없이 흘러가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처음으로 '욕심'이라는 것을 느꼈다. 나도 저런 완벽한 삶을 살고 싶다는, 아니, 저런 완벽한 사람을 갖고 싶다는, 그런 이기적인 욕망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평소보다 훨씬 빠른 걸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 방에 들어서자마자, 금색으로 번쩍이는 명품 가방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끼는, 며칠 전 아빠가 선물해 준 최신상 핸드백을 끌어안았다. 이 핸드백처럼, 이도현도 내 손안에 쏙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왠지 모르게, 그에게는 돈이면 뭐든 해결될 것만 같았다. 그는 부족함 없이 자랐겠지만, 어쩌면 돈으로 살 수 없는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며칠 후, 나는 이도현에게 다가가기로 결심했다. 어떻게 다가갈까 고민하다가, 가장 쉬운 방법, 바로 돈으로 승부하기로 했다. 나는 용돈을 탈탈 털어, 그가 좋아할 만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급 초콜릿과 내가 아끼는 향수를 준비했다. 그리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이거, 너 줄게.”
내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더 상냥하게 흘러나왔다. 그의 눈이 순간 나에게 향했다. 하지만 그 시선에는 호기심이나 설렘 대신, 차가운 경멸이 담겨 있었다.
“뭐야, 이거.”
그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냥. 네가 맛있어 보이니까.”
그는 내 손에 들린 초콜릿을 쳐다보지도 않고, 내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돈으로 뭘 사려는 건 아니겠지?”
그의 말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내가 너무 티 나게 굴었던 걸까. 하지만 나는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최대한 능글맞게 대답했다.
“어머, 내가 그런 속물처럼 보여?”
“그럴지도.”
그는 짧게 대답하고는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무관심에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았다. 나는 그의 앞에서 무너지지 않았다.
“어쨌든, 이건 너 주고 싶어서 준 거야. 내 마음이야.”
나는 초콜릿과 향수를 그의 책상 위에 올려놓고, 태연한 척 일어나 자리를 떴다. 그의 등 뒤에서 그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에 이런 어설픈 선물 가지고 오지 마. 시간 낭비야.”
시간 낭비. 그의 말은 비수처럼 날아와 가슴에 박혔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말에 오기가 생겼다. 그래, 너는 돈으로 살 수 없는 특별한 존재라고? 그렇다면 나는 너를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만큼, 너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어주겠다고.
그날 이후, 나는 이도현에게 끊임없이 돈을 과시하며 다가갔다. 명품 쇼핑 후 일부러 그가 보는 앞에서 쇼핑백을 들고 다니거나, 값비싼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점심시간에는 최상급 도시락을 주문해 먹으며, 그가 힐끗거리는 것을 즐겼다. 내 주변에는 늘 현금과 카드가 넘쳐났고, 나는 그 모든 것을 이용해 이도현의 시선을 끌려 했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언제나 싸늘했다. 그는 내가 돈을 들이밀 때마다 경멸에 찬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고, 때로는 노골적으로 비웃기도 했다.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버릇, 고쳐야 할 텐데.”
“너처럼 돈만 밝히는 애들은 질색이야.”
그의 말은 매번 날카로웠고, 나는 상처받지 않으려 애썼지만, 속으로는 피가 철철 흐르는 듯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날카로운 말들이 나를 더욱 자극했다. 그의 완벽함 속에 숨겨진 차가움, 그리고 나를 향한 그의 경멸. 그 모든 것이 나를 더욱 그에게 빠져들게 만들었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던 이도현을 마주쳤다. 그의 책상 위에는 수많은 전공 서적과 논문들이 쌓여 있었다. 나는 그의 옆자리에 앉아, 내가 가져온 최신 유행 잡지를 펼쳤다. 일부러 큰 소리로 페이지를 넘기며, 그의 신경을 긁었다.
“이렇게 밤늦게까지 공부하다니, 대단해.”
그는 여전히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너처럼 시간 낭비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시간 낭비?’ 나는 그의 말에 발끈했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다.
“글쎄,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는데. 너는?”
그는 드디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짜증과 함께, 희미한 흥미가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네가 뭘 즐긴다는 건지 모르겠는데.”
“이 순간, 너와 함께 있다는 거. 네 완벽한 모습도 좋지만, 이렇게 공부하는 너도 멋있잖아.”
나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잠시 말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작게 웃었다. 그의 웃음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따뜻했다.
“헛소리. 너는 그냥 내가 돈이 많아서 귀찮게 하는 거 아니었어?”
“처음엔 그랬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제는 달라.”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의 눈빛에서 차가움이 조금씩 걷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너라는 사람이 궁금해졌어.”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이내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궁금하면, 공부로 증명해 봐. 네가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인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책에 몰두했다. 그의 말은 여전히 도발적이었지만,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의 도발에 응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그의 말대로, 그에게 공부로 도전장을 내밀기로 결심했다.
그날 이후, 나는 이도현에게 돈을 과시하는 대신, 그가 경멸하던 ‘공부’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밤늦게까지 도서관에 틀어박혀 공부했고, 어려운 문제집을 풀며 씨름했다. 이도현은 그런 나를 비웃듯, 늘 나보다 한 발짝 앞서 있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도발에 응하고, 그의 완벽함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고 싶었다.
어느 날, 시험 결과가 나왔다. 나는 전교 2등, 이도현은 여전히 전교 1등이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랐다. 나는 그의 바로 뒤에 있었고, 나의 성적은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었다. 이도현은 내 성적표를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제법인데?”
그의 칭찬에 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처음으로, 나는 그의 인정을 받은 것 같았다.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거야. 너를 따라잡을 때까지.”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기대하마.”
그의 말에 나의 욕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 단순한 호기심과 소유욕을 넘어, 이제는 그와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의 완벽함 속에서, 나는 나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을 발견한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의 관계는 여전히 불안정했다. 서로 너무 다른 배경과 처지, 그리고 아직 풀리지 않은 오해들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려 노력했지만, 번번이 좌절감을 느꼈다. 포기하려 해도, 그의 매력과 나의 욕심 때문에 쉽사리 마음을 접을 수 없었다.
이도현과 나의 관계를 지켜보던 친구들은, 우리를 응원하면서도 걱정했다. 나의 절친 김민지는 늘 내 곁에서 힘이 되어주었고, 박지훈은 유쾌한 농담으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들의 달달한 로맨스는 때로는 나에게 부러움을, 때로는 위로를 안겨주었다.
어느 날, 나는 이도현에게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그의 집 앞에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도현아, 할 말이 있어.”
그는 의외로 부드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에는 너를 갖고 싶었어. 너의 완벽함, 너의 가진 모든 것들. 하지만 이제는 달라.”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그의 손을 잡았다.
“이제는 너를… 갖고 싶은 게 아니라, 너와 함께하고 싶어.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싶어.”
그는 내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침묵 속에서 나는 불안했지만, 그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 잠시 후, 그는 천천히 내 손을 마주 잡아왔다. 그의 손은 따뜻했고, 그의 눈빛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부드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도… 너에게 끌렸어. 너의 솔직함, 너의 당돌함. 처음에는 돈만 밝히는 줄 알았는데, 네 안의 진심을 보게 되었어.”
그의 말에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드디어, 우리는 서로의 진심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이해하며, 그렇게 따뜻한 관계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비록 우리의 배경은 달랐지만, 우리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진정한 사랑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된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