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2등의 지루함, 1등의 궁금증
늘 2등인 나, 강한나는 삶의 무료함을 느낀다. 완벽한 1등 이도현이 궁금해진다. 어느 날, 부유한 집안의 나는 그에게 다가가기로 결심한다. 그의 완벽함 뒤에 숨겨진 것이 무엇일지 호기심이 샘솟는다.
내 이름은 강한나. 늘 만년 전교 2등. 태어날 때부터 부족함 없이 자랐고, 부족할 것이라고는 내 성적표에 찍힌 '2'라는 숫자뿐이었다. 1등. 그 완벽한 자리에 앉아 있는 누군가는 대체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을까. 어쩌면 나와는 전혀 다른, 빛나는 세상일지도 몰랐다. 내가 사는 이곳은 언제나 따뜻하고 안락했지만, 때로는 너무나 지루했다. 마치 잘 짜인 각본대로 흘러가는 연극처럼.
"한나야, 또 2등이야?"
점심시간, 익숙한 목소리가 내 귓가에 맴돌았다. 내 단짝 친구 김민지였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나를 둘러쌌다.
"응. 뭐, 예상했잖아."
나는 덤덤하게 대답하며 쟁반 위의 샐러드를 포크로 뒤적였다. 민지는 내 옆자리에 앉아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래도 2등이면 대단한 거지. 너처럼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애가 어디 흔하겠어."
민지는 내 칭찬에 으쓱하며 웃었다. 그녀는 내게 있어 언제나 햇살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내 마음 한구석의 지루함은 햇살로도 씻겨지지 않았다.
"그냥… 1등이 궁금해. 늘 1등만 하는 애는 어떤 애일까."
내 말에 민지는 샌드위치를 씹는 것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설마… 이도현 말하는 거야?"
이도현. 전교 1등. 내가 늘 궁금해하던 바로 그 존재였다. 그는 마치 만화책에서 튀어나온 듯한 완벽한 외모에, 공부도, 운동도,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모두 잘하는 그런 아이였다. 마치 신이 빚어놓은 조각상 같다고 할까. 그의 완벽함은 때로는 질투를 불러일으켰지만, 그만큼 강렬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응. 걔 말이야. 걔는 대체 뭐가 부족한 걸까."
"글쎄. 걔는 뭐… 세상이 다 가진 것 같잖아. 부모님도 좋으시고, 집안도 좋고. 용돈도 네가 쓰는 것보다 훨씬 많을걸?"
민지의 말에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 나도 부잣집 딸이었다. 부족함 없이 자랐고,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채워지지 않는 이 공허함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공허함을 채워줄지도 모르는, 완벽한 1등 이도현.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을까?"
내 말에 민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그냥 공부 열심히 해서 네가 1등 하면 되잖아."
"그게 안 되니까 문제지."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궜다. 그때, 복도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반 남학생들이 누군가를 향해 환호하며 달려가는 모습이었다.
"와, 이도현이다!" "오늘도 멋있다!"
나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복도 끝에서 걸어오는 이도현을 보았다. 햇살을 등지고 걸어오는 그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짙은 눈썹 아래 시원하게 뻗은 눈매, 오뚝한 콧날, 얇지만 단단해 보이는 입술. 그의 주변에는 늘 찬란한 후광이 감도는 듯했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 강렬한 '욕심'이었다. 저 완벽한 존재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어쩌면 조금은 위험하고 이기적인 욕심.
"저렇게 완벽한 사람이…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민지는 내 시선을 따라 이도현을 보더니,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저렇게 잘난 애한테는… 너도 안 통할걸?"
민지의 말은 농담이었겠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작은 씨앗을 심어 놓았다. 그래,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도해보고 싶었다. 내 지루한 삶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고 싶었다. 그리고 그 파문의 중심에는, 이도현이라는 완벽한 존재가 있어야만 했다.
그날 이후, 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이도현을 향했다. 수업 시간에 칠판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의 옆모습,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 도서관에서 책에 파묻혀 있는 모습까지. 나는 그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분석했다. 그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완벽했다. 그의 주변에는 늘 질서와 규칙이 존재했고, 흐트러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운전기사에게 말했다.
"내일… 이도현 학생한테 줄 선물이 좀 필요해요."
운전기사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선물이요, 아가씨?"
"음… 그게, 공부에 도움이 될 만한 거요. 비싼 걸로요."
나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나는 부잣집 딸이니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없다고 믿으니까. 이도현에게 다가가기 위해, 나는 내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를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바로 '돈'이었다.
다음 날, 나는 학교에서 가장 비싼 필기구 세트와 최신형 태블릿 PC를 선물로 준비했다. 점심시간, 용기를 내어 이도현에게 다가갔다. 그는 늘 그렇듯 옥상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이도현 학생."
내 목소리에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은 언제나처럼 차갑고 무심했다.
"왜."
짧은 대답에 나는 살짝 움찔했지만, 이내 준비한 선물을 내밀었다.
"이거… 드릴게요. 공부하시는데 좀 도움이 될까 해서요."
그는 내 손에 들린 선물을 잠시 바라보더니,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의 표정에는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고마워해야 하나."
그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나는 괜히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네. 고마워해주세요."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며 그의 옆에 털썩 앉았다. 그의 품에서는 은은한 책 냄새와 함께 시원한 향기가 났다.
"이런 걸로 나한테 뭘 얻으려고."
그가 태블릿 PC를 매만지며 물었다. 그의 직설적인 질문에 나는 당황했지만, 이내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냥… 당신이 궁금해서요. 당신은 대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
그는 잠시 말없이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헛웃음을 터뜨렸다.
"궁금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탐내고 싶은 거겠지. 돈, 명예, 완벽함… 뭐 그런 것들."
그의 말은 정확했다. 나는 그의 완벽함에 매료되었고, 그 완벽함 뒤에 숨겨진 다른 무언가를 알고 싶었다. 어쩌면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아주 작은 기대감.
"그렇지 않아요. 그냥… 당신 자체가 궁금해요."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눈빛이 아주 잠깐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너 같은 애들이 흔히 하는 거짓말이지.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그는 차갑게 쏘아붙였다. 그의 말에 나는 상처받았지만, 동시에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돈으로 무언가를 사려고 했고, 그의 호의를 얻으려고 했다.
"나는 돈으로 당신을 사려는 게 아니에요. 그냥… 당신을 알고 싶다는 거예요."
"알고 싶다고? 네가 뭘 안다고. 내 삶은 너와는 달라. 너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걸 가졌지만, 나는…."
그는 말을 잇지 않았다. 그의 눈빛에 순간 스쳐 지나가는 깊은 고독.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완벽해 보이는 이도현에게도, 나처럼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당신도 외로워요?"
내 물음에 그는 다시 차가운 표정을 되찾았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그리고 앞으로 내게 이런 선물이나 하지 마. 나는 네가 가진 돈으로 나를 포장하려는 태도, 아주 싫어하니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옥상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그가 남기고 간 선물 꾸러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의 말은 날카로웠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이 느껴졌다. 그는 돈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나에게 '혐오'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의 차가운 태도는 내 안의 '욕심'을 더욱 자극했다. 그래, 돈으로 다가가는 것은 틀린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없을까.
그날 이후, 나는 이도현에게 다른 방식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의 완벽함을 칭찬하기보다는, 그의 노력과 재능을 인정해 주었다. 그의 차가운 말에 상처받기보다는, 오히려 공부로 그를 도발했다.
"이도현 학생, 다음 모의고사에서는 꼭 1등 할 거죠?" "이번 시험 범위, 제가 다 외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도와주실래요?"
나의 도발에 그는 처음에는 당황하는 듯했지만, 이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내가 공부로 자신을 도발하는 것을 즐기는 듯했다. 우리는 그렇게 치열한 공부 경쟁을 벌이며 서로에게 조금씩 스며들었다.
물론 쉽지 않았다. 그의 완벽함은 여전히 나를 압도했고, 그의 차가운 말은 가끔 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의 눈빛 속에 비치는 외로움, 그의 말 속에 숨겨진 진심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우리는 학교 앞 카페에서 다시 마주쳤다. 나는 여느 때처럼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도현 학생, 저번 시험에서 2등 했어요. 다음엔 꼭 1등 할 거예요."
그는 내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희미하게 웃었다.
"강한나. 너, 꽤 재밌는 애구나."
그의 말에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의 입에서 나의 이름이, 그것도 '재밌는 애'라는 수식어와 함께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재밌어요?"
"응. 네가 1등을 향해 발버둥 치는 모습이… 꽤 볼 만해."
그의 말은 여전히 날카로웠지만, 이전과는 다른 따뜻함이 느껴졌다. 나는 그의 말에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재밌어해 주세요."
우리의 혐오 로맨스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나는 그의 완벽함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는 나의 끊임없는 도발에 대한 흥미로움으로 서로에게 이끌렸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알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진정한 사랑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랑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존재가 되어줄 것이라는 것을.
물론, 그 과정에서 우리의 친구들이 등장할 것이다. 민지와 지훈이처럼, 달콤하고 로맨틱한 사랑을 보여주며 우리의 관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강한나와 이도현, 두 사람의 진정한 사랑을 위한 여정이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갖고 싶은' 존재가 아닌, '함께하고 싶은' 존재를 향한 나의 마음 변화를 예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우리는 성인이 되어 더욱 뜨겁고 깊은 사랑을 할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