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보이지 않는 손, 엇갈리는 의심

정확히 10년 후, 마지막 눈이 내리던 날. 준수의 친구 다섯 명에게 발신인 불명의 편지가 도착한다. 편지에는 그날 밤 각자의 알리바이에 숨겨진 치명적인 허점이 적혀 있고, 친구들은 서로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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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눈이 솜털처럼 흩날리던 그날, 마을 사람들은 잊고 싶었던 과거의 악몽이 다시금 되살아날까 두려워했다. 10년이라는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갔지만, 준수가 사라진 기차역의 풍경은 여전히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낡은 간판, 녹슨 철길, 그리고 텅 빈 승강장.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그곳에서, 다섯 친구들은 10년 만에 다시 마주 앉았다.

그들의 모임은 어색함 그 자체였다. 10년 전, 마지막 눈이 내리던 밤, 마을의 상징이던 낡은 기차역에서 준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 그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10년이 지난 오늘, 마지막 눈이 내리는 날, 발신인 불명의 편지 한 통이 그들을 다시 묶어주었다. 편지 속에는 그날 밤, 각자가 숨겨왔던 알리바이의 치명적인 허점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새겨져 있었다.

“그러니까… 이 편지가 전부 거짓말이라는 거야?”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김민준이었다. 그는 씩씩거리며 편지를 쥐고 있었다. 10년 전에도 그랬듯, 그는 여전히 정의롭고 의협심 강한 청년이었다. 그의 눈빛은 분노로 이글거렸고, 꽉 다문 입술은 굳게 닫혀 있었다.

“거짓말이라기보다는… 진실의 일부만 담겨 있는 것 같아.”

박서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녀는 차분하고 이성적인 여인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10년 전의 불안감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녀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테이블 위에 놓인 편지를 쓸어내렸다.

“진실의 일부? 그럼 나머지 진실은 대체 뭐냐고. 우리끼리 무슨 비밀이라도 더 숨기고 있었다는 거야?”

최태현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는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냉소적이었지만, 그의 눈빛에는 10년 전의 후회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팔짱을 끼고 민준을 노려보았다.

“글쎄, 우리는 이제 그걸 알아내야 할지도 몰라.”

정유진이 애써 밝은 목소리를 내며 분위기를 전환하려 했다. 그녀는 여전히 발랄하고 사교적인 여인이었지만, 그녀의 눈빛 속에는 깊은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는 테이블 위에 놓인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애꿎은 손톱만 물어뜯었다.

편지는 민준에게 도착한 것이었다. “김민준. 너는 준수가 사라지던 날 밤, 그와 크게 다투고 그를 밀쳤지. 네 알리바이는 네 죄책감을 감추기 위한 거짓말이었어.”

민준은 편지를 읽는 순간 숨을 멈췄다. 그는 준수와 다투었던 그날 밤을 떠올렸다. 술에 취한 준수와 언쟁을 벌이다 결국 주먹다짐까지 했던 밤. 하지만 그는 준수를 밀쳤을 뿐, 그 이후의 일은 전혀 알지 못했다. 정말 편지의 내용대로, 그의 알리바이는 거짓말이었던 걸까?

서연에게 도착한 편지는 더 충격적이었다. “박서연. 너는 준수가 사라지던 날 밤, 그와 함께 있었지. 준수가 너에게 부탁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지금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서연은 편지를 보자마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준수가 사라지던 날 밤, 그와 함께 있었다. 준수는 그녀에게 무언가를 부탁했지만, 두려움 때문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때의 공포가 다시금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태현에게 도착한 편지는 더욱 날카로웠다. “최태현. 너는 준수가 사라지기 전날 밤, 그에게 돈을 빌려주었지. 준수가 돈을 갚지 못하자, 너는 그에게 분노했어. 네 알리바이는 네 분노를 숨기기 위한 것이었어.”

태현은 편지를 찢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는 준수에게 돈을 빌려주었던 것을 기억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준수에게 분노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는 준수의 실종 이후, 그에게 돈을 갚으라고 재촉한 적이 없었다.

유진에게 도착한 편지는 그녀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정유진. 너는 준수가 사라지던 날 밤, 그의 비밀을 알고 있었지. 네가 침묵했던 그 비밀이, 준수를 절벽으로 몰아넣은 것은 아닐까?”

유진은 편지를 보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그녀는 준수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말하면 친구들에게 큰 상처를 줄까 봐, 그녀는 침묵을 지켰다. 이제 와서 그 비밀이 준수의 실종과 관련이 있다면,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알리바이가 거짓말이라고? 내가 준수를 밀쳤다는 게 사실이라는 거야?” 민준은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그럼 너희들은 뭘 숨기고 있었던 건데? 서연아, 너 준수랑 같이 있었다며. 뭘 부탁받았는데?”

서연은 고개를 떨궜다. “말할 수 없어.”

“말할 수 없다고? 준수가 사라졌는데,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면서도 말을 못 하겠다는 거야?” 민준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민준아, 진정해.” 태현이 민준의 어깨를 잡았다. 그의 목소리에는 냉소적인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의 눈빛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편지를 보낸 놈이 우리를 이간질하려는 걸 수도 있어.”

“이간질? 그럼 이 편지는 다 거짓말이라는 거네?” 민준은 태현의 손을 뿌리쳤다. “아니면… 우리가 서로에게 숨기고 있던 게 너무 많아서, 이 편지가 진실처럼 느껴지는 걸 수도 있고.”

“맞아. 우리는 서로를 믿지 못하고 있어.” 유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편지를 보낸 놈이 우리의 약점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약점?” 태현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우리가 무슨 약점이 그렇게 많다고. 다들 평범하게 살고 있잖아.”

“평범하게? 태현아, 네가 준수에게 돈을 빌려줬다는 거, 아무도 몰랐잖아.” 민준이 날카롭게 태현을 쏘아붙였다. “그리고 준수가 사라지기 전날 밤, 너 기차역 근처에서 누군가와 싸우는 걸 봤다는 목격자도 있었어.”

태현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건… 그건 그냥 사소한 시비였어. 준수와는 상관없어.”

“사소한 시비? 준수가 사라지기 바로 전날 밤에?” 민준은 코웃음을 쳤다. “믿기 힘든데.”

“민준아, 너도 마찬가지야.” 서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도 준수랑 크게 다퉜잖아. 그래서 준수가 너를 피해 도망친 거 아니야?”

“내가 준수를 밀친 건 사실이지만, 그건… 그건 정말 우발적이었어!” 민준은 변명하듯 말했다. 그는 준수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준수의 실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우발적? 우발적으로 준수를 밀쳤는데, 그날 밤 준수가 사라졌다고? 이건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상하지 않아?” 유진이 불안한 듯 민준을 바라보았다.

“이상한 건 너야, 유진아.” 태현이 유진을 쏘아붙였다. “너는 준수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며. 대체 그 비밀이 뭐길래, 준수가 그렇게 사라져야만 했던 건데?”

유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준수의 비밀을 떠올렸다. 준수는 사실…

“그만해!” 서연이 소리쳤다. 그녀는 더 이상 서로를 몰아붙이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이렇게 서로를 의심하고 비난하는 동안, 편지를 보낸 놈은 우리를 비웃고 있을 거야. 우리는 지금 서로를 믿지 못하고 있어.”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진실을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는 거잖아.” 민준이 차갑게 말했다. 그는 서연을 바라보았다. “서연아, 너는 준수에게 뭘 부탁받았는지 말해야 해.”

서연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말할 수 없어.”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뭔데? 준수가 너에게 협박이라도 했어?” 민준은 더욱 몰아붙였다.

“아니야…” 서연은 울먹였다. “단지… 내가 말하면, 우리 모두가 위험해질지도 몰라.”

“위험?” 태현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지금 우리 상황이 그렇게 안 위험한 것 같아? 편지를 보낸 놈이 우리를 이렇게 만든 마당에?”

“이 모든 게… 다 준수 때문이야.” 유진이 작게 속삭였다. “준수가… 준수가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거야.”

그녀의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10년 전, 마지막 눈이 내리던 날, 낡은 기차역에서 사라진 친구. 그들의 삶은 준수의 실종으로 인해 송두리째 흔들렸다. 그리고 10년 후, 잊고 싶었던 과거의 비밀이 편지 한 통으로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래, 준수 때문이지.” 민준이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준수가 왜 그랬는지, 우리는 알아야 해. 그리고… 이 편지를 보낸 놈이 누구인지도.”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편지를 집어 들었다. 삐뚤빼뚤한 글씨체, 마치 어린아이가 쓴 듯한 글씨체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날카롭고 치명적인 진실들이 담겨 있었다.

“이 편지를 보낸 놈은… 우리 중에 있을 수도 있어.” 태현이 차갑게 말했다. 그는 민준을 쏘아보았다. “아니면… 우리 모두를 조종하려는 외부의 누군가거나.”

“조종?” 유진이 불안한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가 우리를 조종하려는 거야?”

“그건 나도 몰라.” 태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 편지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의심하게 됐다는 거고. 그게 바로 우리가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풀지 못했던 숙제인 것 같아.”

민준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편지는 그의 손에서 마치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그는 10년 전, 준수와 다투었던 그날 밤을 다시 떠올렸다. 준수의 눈빛, 그의 마지막 말… 그리고 그가 사라지던 순간.

“우리가 준수를… 그렇게 내버려 둔 건 아니겠지?” 서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모두가 침묵했다. 10년 전 마지막 눈이 내리던 날, 그들은 과연 준수에게 무엇을 했던 것일까. 그리고 지금, 그들에게 도착한 편지는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그들을 더욱 깊은 나락으로 빠뜨리기 위한 것일까.

차갑게 내리는 눈발은 마치 그들의 마음처럼 어지러웠다. 엇갈리는 의심, 묻어두었던 비밀, 그리고 10년 전의 가슴 아픈 진실. 그 모든 것이 눈송이처럼 쌓여, 그들을 더욱 깊은 어둠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민준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끝내야만 했다. 준수의 실종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친구들과의 관계를 바로잡아야 했다. 그는 더 이상 과거에 얽매여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대로는 못 있겠어.” 민준이 결심한 듯 말했다. “우리는 진실을 알아야 해. 설령 그 진실이 우리를 더욱 아프게 할지라도.”

그의 말에 서연, 태현, 유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역시 10년 동안 준수의 실종에 대한 죄책감과 슬픔을 안고 살아왔다. 이제는 그 슬픔을 끝내고, 진실과 마주할 때였다.

하지만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그 진실은 그들을 어디로 이끌 것인가. 차가운 겨울바람이 그들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마치 10년 전, 그날 밤의 차가운 공기처럼.

그때, 민준의 휴대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새로운 메시지였다. 발신인은 ‘알 수 없음’.

“뭐야, 또 편지 온 거야?” 태현이 짜증스럽게 물었다.

민준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열었다. 짧은 문자 메시지였다.

“잘 들어봐. 네가 준수를 밀쳤다는 건, 아무도 모를 거야. 하지만… 네가 준수를 밀치기 전에, 준수가 너에게 했던 말이 있어.”

민준은 숨을 멈췄다. 준수가 자신에게 했던 말? 그는 준수와 다투기 전, 준수가 했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이 모든 것은… 시작일 뿐이야.”

문자 메시지의 마지막 문장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시작? 대체 무엇을 말하는 걸까.

차가운 눈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마치 10년 전, 그날처럼. 그러나 이번에는 그들의 마음속에 걷잡을 수 없는 불안감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그들을 옥죄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의 주인은, 바로 그들 중에 있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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