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오리무중의 단서
칼은 끈질기게 단서를 쫓지만, 바이킹들의 행적은 오리무중이다. 도대체 왜 여자아이들만 노리는 것일까? 마을 사람들의 불안감은 커져만 간다. 칼의 허당끼가 발동할 조짐이 보인다.
칼은 콧잔등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는 것도 잊은 채, 낡은 수첩을 뒤적였다. 며칠째 마을을 맴도는 바이킹들의 흔적을 쫓고 있었지만, 발자국 하나 제대로 찾아내지 못했다. 마치 안개처럼 홀연히 나타났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그들이었다. 도대체 왜, 왜 여자아이들만 골라 데려간 것일까? 마을 사람들의 불안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밤마다 들려오는 늑대 울음소리마저 바이킹들의 음산한 노랫소리처럼 들리는 듯했다.
“정말이지, 귀신이라도 홀린 건가?”
칼은 쉰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휘젓자, 며칠간 잠 못 이룬 흔적이 역력했다. 그의 엉뚱함은 때로는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푸는 열쇠가 되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단서가 보이지 않을 때는 오히려 독이 되었다. 그는 큼지막한 구둣발로 여기저기를 쑤시며 흙먼지를 일으켰다.
“이봐요, 칼 형사님! 너무 험하게 다니시면 안 돼요. 우리 마을은 그런 거친 발자국이 익숙하지 않다고요.”
마을 촌장인 늙은 헨리가 빗자루를 들고 나와 투덜거렸다. 헨리는 마을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했지만,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숨기는 듯한 그의 태도는 칼의 의심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걱정 마세요, 촌장님. 이 칼이 반드시 진실을 밝혀내고 아이들을 되찾아 올 테니.”
칼은 씩씩하게 대답했지만, 그의 눈빛에는 깊은 불안감이 서려 있었다. 그는 사건 현장에서 발견한 작은 유물, 마치 톱니바퀴처럼 생긴 기묘한 모양의 금속 조각을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렸다. 이것이 대체 무엇이며, 바이킹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마을 사람들은 칼에게 희망을 걸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도 품고 있었다. 몇 년 전, 마을 외곽에서 벌어졌던 어린 양 도난 사건을 칼이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던 악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도 그는 끈질기게 범인을 추적했지만, 결국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양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칼은 그 사건의 트라우마를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채, 홀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아무것도 안 보여.”
칼은 답답한 마음에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를 콩콩 내리쳤다. 그때, 그의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마을 어귀에 있는 오래된 나무 밑동에 희미하게 새겨진 낯선 문양이었다. 그는 재빨리 수첩을 꺼내 그 문양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이건… 분명 바이킹들의 표식이야!”
칼은 흥분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문양 주변에는 다른 흔적이 전혀 없었다. 마치 누군가 그 문양만을 새겨놓고 사라진 듯했다. 칼은 문양을 자세히 살펴보며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조합해 보았다. 톱니바퀴 모양의 유물과 이 문양, 그리고 여자아이들만 납치해 간다는 점.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그때, 멀리서 마을의 현자인 엘사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칼에게 다가왔다. 엘사는 마을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지만, 그녀의 신비로운 분위기는 때때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칼 형사님, 무언가 찾으셨나요?”
엘사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묘한 힘이 느껴졌다. 칼은 그녀에게 문양에 대해 설명하며 자신의 추측을 이야기했다. 엘사는 칼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문양은… 고대의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운명의 실타래’를 상징하는 것이랍니다. 하지만 단순한 문양이 아닐 수도 있어요.”
“운명의 실타래라니요? 그게 대체 무슨 뜻이죠?”
칼은 엘사의 말에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엘사는 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바이킹들의 목적은 단순히 아이들이 아니에요. 그들은 무언가를… 미래를 바꾸려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엘사의 경고는 칼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미래를 바꾼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하지만 그녀의 진지한 표정을 보니,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래를 바꾼다는 게… 혹시 그들이 아이들을 데려간 이유와 관련이 있는 건가요?”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그들은 자신들의 방식대로 역사를 다시 쓰려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칼은 엘사의 말을 곱씹으며 다시 한번 톱니바퀴 모양의 유물을 떠올렸다. 고대의 신화와 미래를 바꾸려는 계획이라니. 이 모든 것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엉뚱하지만 뛰어난 추리력으로 정평이 났던 칼이었지만, 이번 사건은 그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듯했다.
마을 사람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밤마다 아이들을 잃을까 두려워 문을 걸어 잠그고, 서로를 경계했다. 칼은 그런 마을 사람들을 보며 더욱 책임감을 느꼈다. 그는 엘사에게 감사를 표하고, 다시 한번 바이킹들의 흔적을 쫓기 위해 마을 밖으로 나섰다.
그는 바이킹들이 처음 나타났던 장소로 향했다. 숲은 깊고 어두웠으며, 나뭇가지 사이로 희미한 햇빛만이 간간이 비춰들 뿐이었다. 칼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살폈다. 그때, 그의 발에 무언가 걸렸다. 흙 속에 파묻힌 작은 나무 조각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주워 들었다.
“이건…!”
나무 조각에는 희미하게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너무 오래되어 글자가 거의 지워져 있었지만, 칼은 그것이 바이킹들의 언어임을 직감했다. 그는 돋보기를 꺼내 글자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라… 라그나르….’
라그나르. 바이킹 부족장이었던가. 칼은 수첩에 적힌 정보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는 이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바이킹들을 이끌고 온 자의 이름이 라그나르였다고 했다.
칼은 나무 조각을 손에 쥐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나무 조각이 이곳에 떨어진 것이라면, 이곳이 바이킹들이 머물렀던 장소일지도 몰랐다. 그는 흙바닥을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역시나, 흙이 짓밟힌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이걸 놓칠 뻔했군. 역시 끈기가 필요하다니까.”
칼은 혼잣말을 하며 흙바닥을 조심스럽게 파헤치기 시작했다. 흙을 파낼수록, 무언가 단단한 것이 만져졌다. 그는 더욱 조심스럽게 흙을 걷어냈다. 그것은… 낡은 가죽으로 덮인 작은 상자였다.
칼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낡은 양피지 두루마리와 함께, 톱니바퀴 모양의 유물과 똑같은 모양의 작은 금속 조각이 들어 있었다. 그는 양피지를 펼쳐 들었다. 역시나 바이킹들의 언어로 쓰여 있었다.
“이건… 지도인가?”
양피지에는 복잡한 기호와 함께, 이곳 마을의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지도 곳곳에는 알 수 없는 표시들이 되어 있었다. 칼은 지도와 톱니바퀴 모양의 유물을 번갈아 보았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그가 정신없이 지도를 살피고 있을 때, 갑자기 숲이 술렁이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수많은 발소리가 한꺼번에 들리는 듯했다. 칼은 재빨리 상자를 닫고 몸을 숨겼다.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누구냐! 거기 누구 있느냐!”
굵직한 목소리가 숲을 울렸다. 칼은 숨을 죽인 채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곧이어, 거대한 체구의 바이킹들이 숲 속으로 들어섰다. 그들의 머리에는 뿔 달린 투구가 씌워져 있었고, 손에는 날카로운 도끼를 들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마치 굶주린 늑대처럼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들 중 가장 앞에 서 있던 거구의 바이킹이 칼이 숨어 있던 바위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바로 바이킹 부족장, 라그나르였다. 라그나르의 얼굴에는 험악한 인상이 가득했지만, 그의 눈빛에는 마치 별을 꿰뚫어 보는 듯한 깊이가 느껴졌다.
“찾았다, 인간.”
라그나르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칼은 더 이상 숨어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바위 뒤에서 뛰쳐나와 라그나르 앞에 섰다.
“당신들이 우리 마을 아이들을 납치해 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칼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라그나르는 피식 웃으며 칼을 내려다보았다.
“흥. 아이들이 아니다. 우리는 미래를 위한 씨앗을 거두러 왔을 뿐이다.”
“미래를 위한 씨앗이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칼은 라그나르의 말에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라그나르는 칼에게 다가와 그의 턱을 거칠게 잡았다.
“너희의 역사는 곧 바뀔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쓸 것이다.”
라그나르의 말은 칼에게 깊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는 라그나르의 눈빛 속에서 무언가 엄청난 비밀을 엿본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비밀을 파헤치기에는, 그는 너무나도 무력했다.
라그나르는 칼을 밀쳐내고는, 그의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모두 흩어져서 다시 찾아라. 그 녀석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바이킹들은 숲 속으로 흩어지며 칼을 둘러쌌다. 칼은 낡은 지도와 톱니바퀴 모양의 유물을 품에 안고, 어떻게든 이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머릿속은 오직 하나의 생각으로 가득했다. 아이들을 되찾고, 이 끔찍한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는 것.
그때, 멀리서 마을 쪽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마치 누군가 그에게 신호를 보내는 듯했다. 칼은 희미한 불빛을 향해 눈을 돌렸다. 그것은 엘사였다. 그녀는 멀리서 칼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는 듯했다.
칼은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라그나르를 노려보았다.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외침은 숲 속에 메아리쳤지만, 바이킹들은 그저 비웃을 뿐이었다. 칼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이 위기를 벗어나, 바이킹들의 진짜 목적을 알아내야만 했다. 그리고 그들을 막아야만 했다.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숲은 더욱 음산해졌고, 바이킹들의 웃음소리가 칼의 귓가에 맴돌았다. 칼은 낡은 지도를 다시 한번 펼쳐 들었다. 이 지도 안에, 모든 답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의 눈빛은 어느새 결의에 찬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오리무중의 단서 속에서, 칼은 이제 막 진실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으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