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첫눈에 반한 엘프, 그리고 도망자
숲 속에서 신비로운 엘프 엘리시아를 만난 레온 왕자는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도도한 엘리시아는 왕자를 귀찮아하며 피해 다니기 시작한다. 왕자의 엉뚱한 구애가 시작된다.
별을 쫓는 왕자의 여정
2. 첫눈에 반한 엘프, 그리고 도망자
레온 왕자는 숲 속에서 길을 잃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길을 잃었다’기보다는 ‘길을 잃어버린 척’을 하고 있었다. 그의 콧대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지만, 실상은 지도 한 장 없이 숲에 들어온 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할 수 없어 애써 태연한 척 중이었다. 까마득한 하늘 위, 별 하나가 유난히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 저 별이다! 그의 심장을 간질이는, 그의 길잡이가 되어줄 바로 저 별. 레온 왕자는 벅찬 희망에 부풀어 그 별을 향해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저기, 저 아름다운 별을 따라가면… 그래, 분명 내 운명의 별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가 혼잣말을 하며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숲은 그의 호언장담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를 더욱 깊고 어두운 곳으로 이끌었다. 울창한 나뭇가지들이 하늘을 가리고, 이름 모를 새들의 기괴한 울음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마치 숲 전체가 그의 어설픈 야심을 조롱하는 듯했다.
“이… 이게 아닌데. 분명 이쪽 방향이었는데…”
그는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며 두리번거렸다. 발밑에는 푹신한 이끼 대신 끈적한 진흙이 그의 왕자다운 구두를 더럽혔다. 왕자라는 신분은 숲 속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그의 화려한 옷차림은 숲의 거친 환경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바로 그때, 그의 귓가에 맑고 청량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숲의 정령이 부르는 듯한 신비로운 선율이었다. 레온 왕자는 홀린 듯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빽빽한 나무들을 헤치고 나아가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는 숨을 멈췄다.
햇살이 쏟아지는 숲 속 작은 공터. 그곳에는 꿈결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서 있었다. 은빛 머리카락은 햇살을 받아 찬란하게 빛났고, 투명한 날개는 나비의 날개처럼 섬세했다. 마치 숲의 요정 그 자체였다. 그녀의 맑은 눈동자는 깊은 호수처럼 푸르렀고, 살짝 올라간 입꼬리는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듯했다.
“세상에… 저것이… 별인가?”
레온 왕자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그는 평생 수많은 귀족 부인들과 공주들을 만나왔지만, 이렇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존재는 처음이었다.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저 여인이 바로 자신이 평생 찾아 헤매던, 그의 운명과도 같은 존재라는 것을.
그녀는 고개를 돌려 레온 왕자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놀라움과 함께 경계심이 스쳐 지나갔다. 마치 숲 속에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을 보는 듯한, 차가운 시선이었다.
“누구냐, 너는?”
그녀의 목소리는 숲의 시냇물처럼 맑았지만, 동시에 얼음처럼 차가웠다.
“오, 아름다운 분이시여! 저는… 저는 레온이라고 합니다. 지弧 왕국의 왕자이지요!”
레온 왕자는 최대한 멋들어지게 허리를 펴고 인사했다. 그는 자신의 매력을 어필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왕자라고? 이 숲에 왕자가 무슨 볼일이람?”
엘프 엘리시아는 팔짱을 끼며 레온 왕자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왕자의 번지르르한 옷차림과 어리둥절한 표정이 영락없는 길치임을 증명하는 듯했다. 그녀는 이런 인간 왕자들을 꽤나 귀찮아했다. 늘 숲을 어지럽히고,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숲의 정기를 해치는 존재들이었으니까.
“저는… 제 별을 찾고 있습니다. 저의 길잡이가 되어줄, 우주에서 가장 빛나는 별을 말이지요. 그리고… 바로 당신을 만나는 순간, 저는 알았습니다. 당신이 바로 그 별이라는 것을!”
레온 왕자는 진심을 담아, 아니, 그의 가치관으로는 진심이 담긴 최고의 찬사였다. 그는 엘리시아의 은빛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
엘리시아는 그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별? 내가 별이라고? 웃기지 마. 나는 이 숲의 엘프, 엘리시아다. 너처럼 길 잃은 인간 왕자에게 시간을 낭비할 만큼 한가하지 않아.”
그녀는 더 이상 레온 왕자와의 대화를 이어갈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듯, 뒤돌아 숲 속으로 사라지려 했다.
“잠깐만요! 제발 멈추세요!”
레온 왕자는 다급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엘리시아는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쏜살같이 숲 속으로 사라졌다. 마치 바람처럼, 흔적도 없이.
“저… 저렇게 아름다운 분이… 나를 귀찮아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레온 왕자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평생 왕자로서 원하는 것을 얻어왔다. 하지만 지금,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도 얻을 수 없을 것 같은 벽에 부딪힌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레온 왕자의 숲 속에서의 '별 찾기' 여정은 '엘리시아의 마음 얻기' 작전으로 바뀌었다. 그의 엉뚱하고 코믹한 구애는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다음 날, 레온 왕자는 엘리시아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왕국에서 가장 희귀하다는 ‘황금 사과’였다. 물론, 그 황금 사과가 사실은 길을 가다가 우연히 발견한, 햇빛에 반짝이는 돌멩이를 칠한 것이라는 사실은 엘리시아에게 비밀이었다.
“엘리시아님! 어제는 죄송했습니다. 이 선물을 받아주십시오!”
레온 왕자는 엘리시아가 자주 나타나는 숲의 샘터 근처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엘리시아가 나타나자, 그는 잔뜩 기대에 찬 표정으로 황금 사과를 내밀었다.
엘리시아는 그를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또 너냐? 뭘 그렇게 귀찮게 구는 거야?”
“이것은… 제 마음의 표현입니다. 제 온 마음을 담았습니다!”
레온 왕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황금 사과를 더 가까이 내밀었다.
엘리시아는 황금 사과를 힐끗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이게 뭐냐? 칠한 돌멩이 아니야?”
“아, 아닙니다! 이것은… 특별한 사과입니다! 맛이… 맛이… 황금처럼 달콤하지요!”
레온 왕자는 당황했지만, 능청스럽게 둘러댔다.
엘리시아는 그의 어설픈 거짓말에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됐어. 난 이런 시시한 선물에 넘어갈 만큼 어리석지 않아.”
그녀는 돌멩이를 휙 낚아채더니, 그대로 샘물에 던져버렸다. ‘풍덩!’ 소리와 함께 황금 사과는 물속으로 사라졌다.
“아니! 제 마음이…”
레온 왕자는 입을 떡 벌렸다. 그의 귀여운(?) 구애는 첫날부터 참혹하게 실패했다.
하지만 레온 왕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엘리시아의 마음을 얻기 위해 더욱 기상천외한 방법들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숲 속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꽃들을 따 모아 커다란 꽃다발을 만들었다. 문제는, 그 꽃들이 대부분 독성이 강한 꽃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꽃다발을 들고 엘리시아에게 달려갔지만, 엘리시아는 그의 얼굴에 꽃가루를 묻히며 재채기를 하는 그를 보고 질려버렸다.
“콜록, 콜록! 엘리시아님, 이 꽃은… 향기가 아주… 진하군요!”
“닥쳐! 당장 그 꽃을 치우지 않으면 네 왕자님 지팡이를 부러뜨려 버릴 테다!”
또 어느 날은, 숲 속 동물들을 훈련시켜 엘리시아에게 로맨틱한 세레나데를 불러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훈련 대상은 숲 속에서 가장 시끄럽기로 유명한 까마귀 떼와 숲 속에서 가장 길치인 다람쥐들이었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까마귀들은 왕자의 머리 위에서 똥을 싸고, 다람쥐들은 왕자의 다리에 매달려 길을 잃고 헤매는 소동으로 끝났다.
“이, 이런! 다람쥐 녀석들! 내 왕자님 망토를 갉아먹지 마!”
레온 왕자의 엉뚱한 구애는 매번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엘리시아를 볼 때마다 그의 심장은 더욱 요동쳤다. 엘리시아는 그런 왕자를 귀찮아하면서도, 그의 어설픈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오곤 했다.
“저렇게 끈질긴 인간은 처음이야. 하지만… 저렇게 순진하게 구는 걸 보니, 악의는 없어 보이는군.”
엘리시아는 레온 왕자가 자신을 쫓아다니는 것이 귀찮으면서도, 그의 엉뚱한 시도들을 지켜보는 것이 어느덧 작은 재미가 되었다. 그는 늘 자신을 피해 숲 속 깊은 곳으로 도망쳤지만, 레온 왕자는 끈질기게 그녀를 따라왔다. 때로는 덤불에 걸려 넘어지고, 때로는 나뭇가지에 얼굴을 부딪히며, 온갖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그녀 앞에 나타났다.
어느 날, 레온 왕자는 엘리시아를 위해 숲 속에서 가장 크고 탐스러운 버섯을 구해왔다. 그는 그 버섯으로 엘리시아가 좋아할 만한 요리를 만들어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그는 요리에는 전혀 소질이 없었다. 그의 요리는 끔찍한 맛과 냄새를 자랑했고, 결국 엘리시아는 왕자가 만든 음식을 먹고 복통을 호소하며 쓰러질 뻔했다.
“크윽… 이, 이게 무슨 맛이람?”
엘리시아는 얼굴을 찡그리며 겨우 버섯 수프를 삼켰다.
레온 왕자는 그녀의 반응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요리에는 영 소질이 없어서… 하지만 제 마음만은 진심입니다!”
그는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엘리시아의 이마를 짚었다. 그의 손길은 따뜻했고, 그의 눈빛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 엘리시아는 순간, 그의 순수한 마음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
“괜찮아. 네 마음은 알겠으니. 이제 그만해도 돼.”
엘리시아는 나지막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이전의 차가움 대신, 부드러움이 깃들어 있었다.
레온 왕자는 엘리시아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제가 너무 귀찮게 해드렸나요?”
“아니. 귀찮기는 했지만… 그래도 네 덕분에 숲 속 생활이 조금은 재미있어졌어.”
엘리시아는 작게 미소 지었다. 그것은 레온 왕자가 처음으로 본,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였다. 그의 심장은 다시 한번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엘리시아님… 당신의 미소는… 제가 찾던 별보다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
레온 왕자는 진심을 담아 고백했다. 그의 눈빛은 진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엘리시아는 그의 진심 어린 고백에 얼굴을 붉혔다.
“이제… 그만 따라다니겠어요?”
“아닙니다! 앞으로도 계속 당신 곁을 맴돌겠습니다. 당신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당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당신의 모든 것을 제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레온 왕자는 다시 한번, 그의 엉뚱하지만 진심 어린 사랑을 고백했다. 엘리시아는 그의 끈기와 순수함에, 그리고 그의 진심에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숲 속의 작은 공터에서, 왕자와 엘프의 기묘하고도 로맨틱한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