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과거의 그림자

과거, 경쟁적인 환경 속에서 받은 날카로운 평가나 무관심은 민준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맞추려 애쓰다 오히려 자신감을 잃고, 박수받는 상황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다. 이 트라우마는 그의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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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준에게 박수는 늘 낯설었다. 누군가 자신을 위해 손뼉을 치는 순간, 그는 마치 투명인간이 된 듯 숨고 싶어졌다. 소음처럼 귓가를 때리는 박수 소리는 축하가 아닌, 자신을 향한 날카로운 평가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의 심장은 쿵쾅거렸고,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그저 어색한 미소만 억지로 지어 보일 뿐이었다.

어린 시절, 민준은 늘 그림자 속에 숨어 있었다. 빛나는 무대 위 주인공이 아닌, 그저 조용히 제 할 일을 하는 엑스트라였다. 그런 그에게도 박수를 받을 기회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과학 발표회에서 열심히 준비한 발표를 마쳤을 때였다. 친구들의 환호와 선생님의 칭찬이 쏟아졌지만, 민준은 오히려 당황했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칭찬 속에 숨겨진 다른 의미들을 억지로 찾아내려 애썼다. ‘저렇게까지 칭찬할 일인가?’, ‘혹시 나를 비웃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꼬리를 물었다.

특히 최지훈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같은 반 친구였던 그는 늘 자신감 넘치고, 뭐든 앞서나가길 좋아했다. 발표회 날, 민준의 발표가 끝나고 모두가 박수를 칠 때, 지훈은 민준의 옆으로 다가와 툭 하고 어깨를 쳤다. “민준이, 발표 잘했네. 근데 말이야, 조금만 더 자신감 있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네 발표, 솔직히 좀 떨렸잖아.” 악의 없이 내뱉은 지훈의 말이었지만, 민준에게는 비수처럼 꽂혔다. ‘떨렸다고? 다들 좋다고 박수 쳤는데, 지훈이는 그걸 알아봤다고? 내가 부족하다는 걸….’ 그 순간, 민준이 애써 쌓아 올렸던 작은 자신감은 산산조각 났다. 그 후로도 지훈은 민준의 발표나 글짓기 등 결과물에 대해 솔직하다 못해 때로는 무신경한 평가를 내리곤 했다. 민준은 그런 지훈의 평가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 애썼다. ‘지훈이 말대로라면 나는 아직 부족한 거야. 더 잘해야 해. 그래야 박수받을 자격이 생기는 거야.’

하지만 노력할수록 민준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타인의 기준에 자신을 억지로 맞추는 과정에서 그는 점점 자신을 잃어갔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조차 헷갈렸다. 그러니 타인의 박수는 당연히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저 상황에 따라 주어지는 의례적인 것이라고만 생각하게 되었다. 박수를 받는 상황은 그에게 ‘나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잔인한 순간일 뿐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한 달 전, 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팀원들의 노고가 컸기에 모두가 함께 축하하는 자리였다. 대표님을 비롯한 여러 임원들이 와서 격려사를 했고, 프로젝트를 이끈 민준에게는 특별히 더 큰 박수가 쏟아졌다. 모두들 “민준 씨 덕분입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민준의 마음은 무거웠다. ‘이 박수가 나만의 것일까? 팀원들이 없었다면 이 프로젝트는 성공하지 못했을 텐데. 나 혼자만 주목받는 건 옳지 않아.’ 그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숙였지만, 속으로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뻣뻣하게 서 있는 게 최선인가?’ 하고만 생각했다.

그의 어색한 표정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역시 이서연이었다. 민준의 오랜 친구인 그녀는 민준의 곁으로 다가와 그의 팔을 살짝 쳤다. “야, 민준아. 진짜 멋있었어. 네 덕분에 우리 팀이 이렇게 빛날 수 있었던 거야.” 서연의 눈빛은 진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민준은 서연의 따뜻한 말에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그냥… 좀 어색해서.” 민준은 작게 중얼거렸다. “어색하다니. 네가 얼마나 잘했는데. 다들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거잖아.” “아는데… 뭔가 내가 받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나 혼자만….” 서연은 민준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녀는 민준이 과거에 박수받는 것을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대략 짐작하고 있었다. 어릴 적, 민준이 얼마나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아이였는지, 그리고 그런 민준에게 최지훈이라는 친구가 얼마나 날카로운 말들로 상처를 주었는지. 서연은 민준이 자신의 재능을 숨기고, 타인의 시선에 갇혀 살아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민준아, 있잖아. 박수는 네가 잘해서 받는 거기도 하지만, 네 존재 자체에 대한 응원이기도 해. 네가 노력하고, 애쓰고, 또 네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걸 알아준다는 뜻이기도 하고.” “응…” “네가 받은 박수를 ‘나 혼자만’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나를 있게 해준 모든 것들’에게 보내는 감사함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팀원들, 가족, 친구들… 그리고 너 자신에게.” 서연의 말은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민준은 처음으로 박수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밤, 민준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서연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박수… 응원… 감사함…’ 그는 과거의 기억들을 더듬었다. 발표회 날, 지훈이 했던 말. ‘조금만 더 자신감 있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는 그 말이 비난처럼 들렸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지훈은 그저 자신의 기준에서 솔직하게 말했던 것뿐이었다. 민준은 항상 지훈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했지만, 사실 지훈의 기준은 민준의 기준이 아니었다. 오히려 민준은 자신만의 방식으로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서연을 통해 조금씩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 뒤, 민준은 박 선생님을 찾아갔다. 박 선생님은 민준이 어릴 적부터 다니던 동네 도서관의 관장님이자, 민준에게는 인생의 멘토와도 같은 분이었다. 민준은 선생님께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박수를 받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렵게 느껴지는지, 타인의 시선이 왜 그렇게 두려운지에 대해.

박 선생님은 민준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셨다. 선생님의 얼굴에는 깊은 이해심과 따뜻한 연민이 어려 있었다. 민준의 이야기가 끝나자, 선생님은 창밖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여셨다.

“민준아, 세상에는 참 다양한 박수가 있단다. 어떤 박수는 환호와 갈채처럼 화려하고 뜨겁지. 또 어떤 박수는 잔잔한 물결처럼 부드럽고 따뜻하기도 하고. 그리고 어떤 박수는… 때로는 날카로운 돌멩이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 선생님은 민준을 똑바로 바라보셨다. “너는 아마 그 돌멩이 같은 박수 때문에 많이 아팠을 게다. 하지만 민준아, 중요한 것은 그 박수 소리가 아니라, 그 박수를 보내는 사람의 마음과, 네가 그 박수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거야.”

선생님은 잠시 말을 멈추고, 민준의 손을 잡으셨다. “네 안에는 아주 깊고 따뜻한 샘물이 흐르고 있단다. 네가 애써 외면하고, 억지로 덮어두려 했던 바로 그 샘물이지. 세상이 네게 던지는 돌멩이들이 그 샘물을 흐리게 할 수는 있지만, 샘물 자체를 메마르게 할 수는 없단다. 네가 해야 할 일은, 그 샘물을 다시 맑게 하는 거야. 다른 사람의 돌멩이 때문이 아니라, 너 자신을 위해서.”

박 선생님은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셨다. 젊은 시절, 선생님 역시 자신을 향한 비판과 무관심 때문에 힘들어했던 때가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깨달았다고 했다. 세상의 모든 박수를 다 받을 수도 없고, 다 받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아가되,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의 따뜻한 박수에는 귀 기울일 줄 아는 것이라고.

“네가 진정으로 너 자신을 사랑하고 믿을 때, 세상의 어떤 박수도 너를 흔들 수 없을 거란다. 오히려 네 안의 샘물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줄 거야. 그리고 그때가 되면, 너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따뜻한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게다.”

선생님의 말씀은 민준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과거의 상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그것이 자신을 옭아매는 족쇄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민준은 서서히, 아주 조심스럽게, 자신을 향한 박수를 ‘평가’가 아닌 ‘격려’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시작했다.

변화는 작고 미미했다. 팀 회의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냈을 때, 동료들이 “민준 씨,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라며 박수를 쳐주면, 그는 더 이상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대신, “감사합니다. 여러분 덕분입니다.”라고 작게나마 화답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점차 그 말이 입에 붙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민준은 사내 작은 발표회에서 자신이 관여했던 프로젝트의 성과를 발표하게 되었다. 이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하지만 서연과 박 선생님의 격려 덕분에, 그는 용기를 냈다. 떨리는 마음으로 단상에 섰지만, 이상하게도 예전처럼 두렵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이 준비한 내용을 차분하게, 그리고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발표가 끝나자, 청중석에서 따뜻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전과는 다른, 훨씬 더 부드럽고 진심 어린 박수였다.

그 순간, 민준은 처음으로 진심으로 웃었다.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어색함이나 두려움이 없었다. 대신, 감사함과 함께 잔잔한 기쁨이 차올랐다. ‘이 박수는… 나를 위한 거구나. 내가 노력한 결과에 대한… 응원이구나.’ 그는 눈을 감고, 그 따뜻한 박수 소리를 온몸으로 느꼈다. 마치 세상의 모든 따뜻한 기운이 자신에게로 흘러들어오는 것 같았다.

발표가 끝나고 내려오자, 서연이 달려와 민준을 껴안았다. “봤지? 네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민준은 서연의 품에 안겨 환하게 웃었다. 그의 눈가에는 어느새 촉촉한 물기가 맺혀 있었다.

그날 이후, 민준은 조금씩 변해갔다. 그는 더 이상 박수를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타인의 작은 성취에도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 되었다. 동료의 발표가 끝나면, 그는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힘찬 박수를 보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동료들도 점차 민준의 진심 어린 박수에 화답하기 시작했다.

민준은 깨달았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생각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에너지는, 서로에게 보내는 진심 어린 박수를 통해 더욱 커지고, 더욱 빛날 수 있다는 것을. 과거의 그림자는 여전히 존재했지만, 이제 민준은 그 그림자 속에서 길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그 그림자를 발판 삼아, 더욱 밝고 따뜻한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이제, 자신에게 쏟아지는 박수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또 기꺼이 타인에게 박수를 보내는,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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