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어색한 환호
주인공 민준은 칭찬이나 박수갈채를 받을 때마다 어색함과 불안감을 느낀다. 마치 자신을 향한 시선들이 부담스럽고, 자신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이러한 감정은 어린 시절의 어떤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까.
김민준은 박수를 받는 것이 늘 어색했다. 누군가 자신을 향해 손뼉을 쳐줄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렸고, 얼굴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마치 세상의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듯한 그 순간이, 그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칭찬이라도 들으면 더욱 그러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했다고.’ 속으로 되뇌며 얼른 화제를 돌리거나, 과장을 섞어 겸손하게 넘기기 일쑤였다. 그렇게 애써 자신을 낮추고, 주목받는 상황을 회피하며 그는 살아왔다.
어린 시절, 민준은 유난히 조용하고 소심한 아이였다. 발표 시간이 다가오면 배가 아팠고, 친구들 앞에서 무언가를 뽐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민준에게 ‘최지훈’은 늘 넘기 힘든 산이었다. 지훈은 민준과 동갑이었지만, 모든 면에서 민준과는 달랐다. 똑 부러지는 말투, 자신감 넘치는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뛰어난 재능. 지훈은 학급에서 늘 주목받는 아이였고, 그의 작은 성취에도 친구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어느 날, 학예회에서 민준은 작은 연극에 참여했다. 대사 몇 마디 없는 단역이었지만, 민준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무대에 서기 전, 민준은 손이 떨리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연극은 무사히 끝났고, 민준은 숨을 헐떡이며 무대 뒤로 달려 나왔다. 그때, 낯선 선생님 한 분이 다가와 민준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김민준 학생, 오늘 정말 수고했어요. 용기 내줘서 고마워요.” 그리고는 따뜻한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그 순간, 민준은 얼어붙었다. 낯선 사람의 칭찬과 박수가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수많은 눈들이 자신을 꿰뚫어 보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내가 이걸 받을 자격이 있나? 이 선생님은 내가 뭘 했다고 이렇게 칭찬하는 거지?’ 혼란스러움과 함께 찾아온 것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이었다. 그날 이후, 민준은 칭찬과 박수를 받을 때마다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마치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혹은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고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것처럼.
“민준아, 또 그러고 있어?”
친한 친구 이서연이 민준의 귓가에 속삭였다. 대학 강의실, 발표를 마친 민준은 여느 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교수님은 민준의 발표 내용에 대해 몇 가지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었고, 몇몇 학생들은 가벼운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민준은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을 뿐이었다.
“아니야. 그냥… 좀 떨었어.” 민준은 애써 태연한 척 대답했다.
서연은 민준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떨긴 뭘 떨어. 오늘 발표 진짜 좋았어. 준비 많이 한 거 티 나더라.”
“아니, 뭐… 그 정도는 아니야.” 민준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서연은 한숨을 쉬며 민준의 옆자리에 앉았다. “너 진짜 고쳐야 돼. 이렇게 좋은 걸 받아들이는 걸 그렇게 힘들어하면 어떡해.”
“그게… 쉽지가 않네.” 민준은 씁쓸하게 웃었다.
서연은 민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어릴 때부터 그랬지? 칭찬받으면 도망가고, 박수받으면 얼굴 빨개지고. 무슨 트라우마라도 있는 거야?”
민준은 서연의 물음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는 과거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그는 반에서 늘 ‘평범 이하’로 취급받는 아이였다. 공부도, 운동도, 특출난 재능도 없었다. 그런 그에게 ‘최지훈’은 언제나 비교 대상이었다. 지훈은 모든 면에서 뛰어났고, 그의 작은 성과에도 친구들은 ‘와!’ 하고 감탄하며 박수를 보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작은 발표회가 있었다. 민준은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이 좋아하는 책에 대해 발표했다. 준비는 나름 열심히 했지만, 그의 발표는 지루하고 뻔했다. 발표가 끝나자, 반 친구들은 영혼 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때, 구석에 앉아 있던 지훈이 큰 소리로 말했다.
“야, 민준이 발표 왜 저래? 재미도 없고, 내용도 없고. 시간만 아깝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민준은 온몸이 얼어붙었다. 친구들의 박수 소리가 순식간에 귓가에서 사라지고, 지훈의 차가운 목소리만이 맴돌았다. 마치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민준은 칭찬과 박수를 더욱 두려워하게 되었다. 자신이 받은 칭찬이 ‘진심’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 혹은 자신이 그 칭찬을 받을 만큼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불안감.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냥… 어릴 때부터 박수받는 게 익숙하지 않았어.” 민준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왠지 모르게… 내가 받을 만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서연은 민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하지만 민준아, 네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나는 알아. 네가 얼마나 진심으로 무언가를 대하는지 나는 봐. 그런데 왜 스스로를 그렇게 깎아내리는 거야?”
“그게… 잘 안 돼.” 민준은 힘없이 말했다.
그때, 강의실 문이 열리고 박 선생님이 들어섰다. 박 선생님은 민준과 서연이 다니는 학과의 교수님으로, 인자하고 현명한 분으로 유명했다. 선생님은 민준과 서연의 대화를 언뜻 듣고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김민준 학생, 발표 잘 들었습니다. 덕분에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었어요.”
민준은 선생님의 칭찬에 또다시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민준의 어색한 반응을 이미 예상했다는 듯, 민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민준 학생, 혹시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는다’는 말 알죠?”
민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는 그 말을 조금 다르게 생각해요.” 선생님은 말을 이었다. “오히려 ‘호랑이 굴 앞에 서야 호랑이를 잡을 용기가 생긴다’고 말이죠. 아무리 좋은 기회가 눈앞에 있어도, 스스로 다가가려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잡을 수 없어요. 칭찬과 박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를 증명하는, 세상이 당신에게 보내는 격려의 신호인데, 왜 그것을 밀어내려고만 하는 건가요?”
선생님의 말은 민준의 마음 깊은 곳을 울렸다. 마치 오랜 갈증을 해소해주는 단비처럼, 선생님의 지혜로운 말씀은 민준의 얼어붙었던 마음을 조금씩 녹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선생님, 제가 그 칭찬을 받을 만한 사람인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많아요. 마치… 제 안에 텅 빈 공간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민준은 용기를 내어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박 선생님은 민준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리고는 따뜻한 눈빛으로 민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텅 빈 공간은, 채워지지 않아서 생긴 것이 아니라. 아직 당신 스스로가 그 공간의 크기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 생긴 것이랍니다. 세상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당신에게서 발견하고 있어요. 당신의 진심, 당신의 노력, 당신의 따뜻한 마음까지도요. 그것들을 세상은 박수로 이야기해주는 것인데, 당신은 그 박수를 ‘결과’에 대한 평가로만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닌가요?”
선생님의 말은 민준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박수와 칭찬을 단순히 ‘잘했다’는 평가가 아니라, 자신을 향한 세상의 따뜻한 관심과 격려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힘들겠지만, 작은 것부터 연습해보는 건 어떨까요?” 선생님은 민준에게 제안했다. “오늘처럼 누군가 당신에게 칭찬을 건넨다면, ‘감사합니다’라고 먼저 말해보세요. 그리고 그 칭찬을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처음에는 어색하겠지만, 계속 반복하다 보면 조금씩 익숙해질 겁니다.”
그날 이후, 민준은 박 선생님의 조언을 마음에 새기고 작은 변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조차 목이 메는 듯 어색했지만, 서연이 옆에서 끊임없이 격려해주었고, 박 선생님은 때때로 민준을 격려하며 작은 성취에도 진심 어린 칭찬을 건네주었다.
어느 날, 민준은 친구들과 함께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민준은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땀에 흠뻑 젖은 채, 민준은 자신이 맡은 일을 모두 끝냈다. 그때, 함께 봉사활동을 했던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민준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총각, 오늘 정말 고생 많았어요. 이렇게 더운 날씨에 땀 흘리면서 열심히 하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던지요. 정말 고마워요.”
그녀는 민준의 어깨를 툭 치며 환하게 웃었다. 민준은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박 선생님의 말을 떠올렸다. ‘먼저 감사합니다라고 말해보세요.’
“아, 아닙니다. 제가 더 감사드리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어서요.” 민준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민준의 대답에 더욱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민준은 그녀의 진심 어린 미소와 따뜻한 눈빛을 보며, 이전과는 다른 따뜻한 감정을 느꼈다. 박수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그녀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자신에게는 그 어떤 박수보다 값지게 느껴졌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민준은 작은 성취에도, 누군가의 작은 도움에도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연습을 꾸준히 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점차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입에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감사합니다’라고 말할수록 마음속에서 긍정적인 에너지가 샘솟는 것을 느꼈다.
어느 날, 민준은 서연과 함께 영화를 보고 나왔다. 영화가 너무 좋았던 민준은 서연에게 연신 감탄사를 쏟아냈다. “와, 진짜 인생 영화야. 너도 좋았지?”
서연은 민준의 들뜬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응, 좋았지. 근데 너 오늘 진짜 신났네? 평소 같으면 ‘나쁘지 않았어’ 정도로 끝났을 텐데.”
민준은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냥… 좋으니까 좋다고 말하는 거지.”
그 순간, 민준은 깨달았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누군가의 박수 소리만이 아니라, 일상 속 작은 말 한마디, 따뜻한 눈빛, 진심 어린 미소까지도 모두 자신을 향한 격려와 사랑이라는 것을.
이제 민준은 더 이상 박수받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의 진심 어린 박수를 받으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따뜻한 기쁨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변화는, 자신도 기꺼이 타인을 향해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 박 선생님의 은퇴 기념 강연이 있었다. 선생님은 학생들 앞에서 유쾌하고 지혜로운 강연을 이어갔다. 강연이 끝나자, 학생들은 뜨거운 박수로 선생님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했다. 민준은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을 담아, 힘차게 박수를 보냈다. 그의 박수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을 이끌어준 멘토에게 보내는 감사였고, 자신도 이제는 타인에게 진심으로 기쁨을 주고받을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민준은 앞으로 펼쳐질 자신의 삶이, 수많은 따뜻한 박수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