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정혼자 납시오! 깐깐 도령의 강제 소개팅

집안의 등쌀에 못 이겨 정혼자 김단아를 만나러 간 이율곡. 첫 만남부터 칠칠맞고 엉뚱한 단아의 모습에 율곡은 이마를 짚고, 이 결혼은 망했다 직감한다. 율곡의 평온한 삶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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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랑에 물들다

제1장 정혼자 납시오! 깐깐 도령의 강제 소개팅

"아이고, 내 팔자야."

이정승 대감이 앓는 소리를 냈다. 율곡, 이 집안의 자랑이자 골칫덩어리 도령이 드디어 결혼을 해야 할 판이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저 멀리 변방에 사는 김 진사의 따님, 김단아 아씨와 말이다. 율곡의 깐깐함은 천하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다. 옷매무새 하나 흐트러진 것을 보지 못했고, 책상 위 연필 한 자루가 제자리를 벗어나는 것도 용납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완벽주의자 도령이었다. 그런 율곡에게, 그런 '완벽함'과는 거리가 한참 먼, 아니, 아예 정반대에 서 있는 듯한 김단아 아씨라니.

"아버지, 제가 그 김단아 아씨와 혼인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율곡은 찻잔을 든 채, 아버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이건 말도 안 된다'는 불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유라니, 너도 이제 스물셋이다. 이만하면 장가 갈 나이 아니냐. 게다가 김 진사 대감이 우리 가문과 오랜 벗이니, 이 혼인이 얼마나 좋은 일이냐."

이정승 대감은 헛기침을 하며 율곡의 말문을 막았다. 사실, 혼인을 강요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최근 가문의 재정 상태가 좋지 않았고, 김 진사의 막대한 재산이 이 혼사를 통해 가문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물론, 아들 율곡의 미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율곡에게 그런 속셈을 굳이 밝힐 필요는 없었다.

"벗이라니요. 그분 댁은 평생 가보지도 못했습니다." 율곡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리고 제 혼인은 제 마음대로 정할 수 없는 사안입니까? 제 삶의 중요한 결정인데, 어찌 아버지께서 일방적으로 결정하십니까."

"네 놈이 무슨 마음대로 정한단 말이냐. 네가 이 집안의 기둥이 될 아이인데, 네 마음대로 하면 이 집안이 어떻게 되겠느냐. 당장 김 진사 대감 댁으로 가서 인사를 드려라. 이번 주 안으로."

이정승 대감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실려 있었다. 율곡은 더 이상 아버지와 실랑이를 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겠습니다. 가보겠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씁쓸함과 체념이 뒤섞여 있었다. 율곡은 자신의 평온한 삶이, 이 김단아 아씨라는 존재로 인해 산산조각 날 것을 예감했다.

***

김단아의 집은 율곡의 집과는 비교도 안 되게 소박했다. 흙담에 기와를 얹은, 그야말로 민초의 집이었다. 율곡은 마차에서 내려 삐걱이는 대문을 밀고 들어섰다. 집 안에서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머, 오셨어요?"

가장 먼저 율곡을 맞이한 것은 단아의 어머니였다. 넉넉한 인심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율곡은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십니까. 이율곡이라 합니다. 혼인을 약조한 김단아 아씨를 뵈러 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마침 단아가 마당에서 닭이랑 씨름하고 있었는데."

마침이라니. 율곡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닭이랑 씨름이라니. 그의 귀에 들려오는 소리만으로도 이미 그의 평온한 마음은 심란해지고 있었다.

"단아! 손님이 오셨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자, 마당 저편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웬 여인이 달려 나왔다. 옥색 치마에 분홍 저고리. 칠칠치 못한 모습으로, 머리카락 몇 가닥이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율곡은 순간 숨을 멈췄다. 저것이, 저것이 나의 정혼자란 말인가?

"네, 네! 왔어요!"

단아는 흙 묻은 손으로 허리춤을 닦으며 율곡 앞으로 다가섰다. 율곡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저… 안녕하세요." 단아가 씩씩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는 김단아라고 해요. 율곡 도련님 맞으시죠?"

"…예." 율곡은 간신히 대답했다. 그의 뇌리에서는 이미 '이 결혼은 망했다'는 생각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다.

"어머, 율곡 도련님은 생각보다 더 잘생기셨네요!" 단아는 율곡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감탄했다. 율곡은 쑥스러운 듯, 혹은 당황한 듯 시선을 피했다. "그런데, 닭을 잡다가 왔더니 옷이 좀…."

단아는 자신의 흙 묻은 치마를 내려다보며 민망한 듯 웃었다. 율곡은 말문이 막혔다. 닭을 잡다가 왔다는 말도 황당했지만,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단아의 태도가 더 황당했다.

"괜찮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율곡은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단아는 율곡을 집 안으로 안내했다. 집 안은 마당과는 달리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하지만 삐걱이는 나무 문이며, 낡은 가구들을 보아하니 넉넉한 형편은 아닌 듯했다.

"저, 율곡 도련님. 저희 집이 좀 누추하죠? 죄송해요." 단아가 율곡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아닙니다. 편안한 곳이군요." 율곡은 정중하게 대답했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수백 가지의 불만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닭을 잡다가 온 정혼자라니. 대체 이 혼인이 어떻게 성사될 수 있단 말인가.

"어머니, 차 좀 내오세요!" 단아가 어머니를 불렀다.

곧 단아의 어머니가 숭늉을 가져왔다. 율곡은 숭늉을 받아들고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숭늉은 따뜻했지만, 그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가는 듯했다.

"율곡 도련님은 혹시… 글공부 좋아하세요?" 단아가 물었다.

"글공부… 좋아합니다." 율곡은 짧게 대답했다.

"저는 왠지 글공부는 재미가 없더라고요. 칠판에 글씨 쓰는 것도 힘들고…." 단아는 혀를 내밀며 말했다.

칠판에 글씨를 쓰는 것도 힘들다니. 율곡은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율곡 집안의 귀한 도령으로, 어려서부터 학문에 매진하며 장차 나라의 큰 인물이 되도록 훈련받아 왔다. 그런데 그의 정혼자는 칠판 글씨도 힘들어한다니.

"단아, 율곡 도련님께 너무 폐 끼치지 말고." 단아의 어머니가 부엌에서 말했다.

"아유, 어머니. 괜찮아요." 단아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율곡은 단아의 씩씩함과 엉뚱함, 그리고 칠칠치 못한 모습 사이에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그는 이 혼인을 어떻게든 파투 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절대로.

"김단아 아씨." 율곡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저는… 이 혼인을 더 이상 진행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단아는 율곡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왜요?"

"저는… 율곡 집안의 명예를 지켜야 하는 사람입니다. 아씨의 모습은… 제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율곡은 애써 냉정하게 말했다.

단아는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율곡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구나. 그럼 제가 좀 부족한가 보네요." 단아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해요, 율곡 도련님. 제가 좀… 칠칠치 못하죠?"

율곡은 단아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단아의 실망한 표정을 보며 죄책감을 느꼈지만, 이 혼인을 계속 이어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저는 율곡 도련님이 좋아요." 단아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말했다. 그녀의 눈빛은 진지했다. "좀 까칠하긴 하셔도… 왠지 미워할 수가 없어요."

율곡은 단아의 예상치 못한 고백에 당황했다. 그는 단아의 순수한 눈빛을 보며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었다.

"기름값도 아깝고, 시간도 아깝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율곡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섰다. 그의 뒤에서 단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다음에 또 오세요!"

율곡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차에 올랐다. 그의 마음속에는 혼란스러움과 함께, 묘한 찝찝함이 남아 있었다. 닭과 씨름하던 왈가닥 아씨, 김단아. 그녀의 엉뚱함과 순수함은 그의 깐깐한 마음에 작은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율곡은 자신의 평온한 삶에 예상치 못한 복병이 등장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 복병은, 닭과 씨름하는 것처럼 씩씩하고 엉뚱한 모습으로 그의 삶을 뒤흔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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