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라이벌의 등장, 다크 로즈
데싱의 임무를 방해하듯 나타난 라이벌 킬러, 다크 로즈. 그녀는 냉철하고 실력 있는 킬러로, 데싱을 얕보지만 그의 예상치 못한 모습에 흥미를 느낀다. 과거 킬러 양성소 동기였던 두 사람의 악연이 다시 시작된다.
나는 킬러다.
시끄러운 도심의 소음 속에서 데싱은 낡은 선글라스를 치켜 올렸다. 쨍한 오후의 햇살이 눈을 찔렀지만, 그는 오히려 그 빛을 즐기는 듯했다. 마지막 임무. 은퇴 후 평화로운 삶을 위해 꼭 성공해야 할 임무였다. 의뢰인은 블랙 길드,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최민준이라는 사업가의 제거였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사업가였지만, 그의 뒤에는 어두운 사업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후우, 인생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니까."
데싱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자신이 킬러가 되고, 이제는 그 회사를 다니던 시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가끔은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과거의 트라우마는 그를 이 길로 이끌었고, 이제는 이 길 위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고 있었다.
타겟의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 잠복하던 중,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척이 느껴졌다. 싸늘하고, 날카로운. 마치 날카로운 칼날이 등 뒤에서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이었다. 데싱은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것은…
"네가 여기 있을 줄 알았지."
검은색 실크 드레스는 그녀의 날렵한 몸매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붉은 장미 한 송이를 머리에 꽂고, 짙은 화장을 한 얼굴에는 차가운 냉기만이 감돌았다. 다크 로즈. 과거 킬러 양성소에서 함께 훈련했던, 그리고 지금까지도 데싱의 라이벌로 꼽히는 여자였다.
"어휴, 박영희 씨 아니십니까. 오랜만이네요. 여전하시네, 그 싸늘함." 데싱은 능글맞게 웃으며 선글라스를 고쳐 썼다. '박영희'는 그녀의 본명이었지만, 킬러 세계에서는 '다크 로즈'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했다.
"데싱. 네놈이 이 임무를 맡았다는 소문 들었어." 다크 로즈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내 앞길을 막지 마. 이번 임무는 내가 끝낼 테니."
"아이고, 무서워라. 그렇게 나오시면 저야 곤란한데요. 저도 이거 마지막 임무라서 말이죠. 은퇴하고 조용히 살아야 하는데, 박영희 씨 같은 분이 자꾸 나타나서 방해하면 제가 어떻게 은퇴를 하겠습니까?"
"흥. 네놈의 그 허술한 연기, 지겹지도 않나?" 다크 로즈는 코웃음을 쳤다. "어차피 네놈 실력은 내가 잘 알지. 결정적인 순간에 꼭 실수를 하지."
"실수라기보다는… 뭐, 인간적인 면모라고 해두죠. 박영희 씨는 그런 거 모르시잖아요? 늘 칼날처럼 날카롭기만 하고." 데싱은 짐짓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의 속셈은 달랐다. 다크 로즈는 분명 강력한 상대였지만, 동시에 그에게는 묘한 신경 쓰이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녀의 냉정함 뒤에 숨겨진 뭔가를, 그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인간적인 면모? 킬러에게 그런 건 사치일 뿐이야." 다크 로즈는 데싱을 쏘아보았다. "이번엔 네놈의 그 '인간적인 면모' 때문에 임무를 망치지 않도록 내가 직접 나서주지."
"좋아요, 그럼. 누가 먼저 최민준을 잡는지 내기라도 할까요? 진 사람이 이긴 사람에게 10억 드리기." 데싱은 뻔뻔하게 제안했다. 돈을 밝히는 속물인 척하는 것은 그의 오랜 버릇이었다.
"흥미롭군. 하지만 네놈의 돈은 필요 없어. 대신… 네놈의 목숨을 걸어보지." 다크 로즈의 눈빛이 번뜩였다.
"어우, 무서워라. 목숨은 소중하니까요. 그래도 박영희 씨가 그렇게 제 목숨을 탐내시는 걸 보니, 제가 좀 매력적이긴 한가 봅니다?" 데싱은 끈질기게 능글거렸다.
"쓸데없는 소리. 최민준의 위치는 알고 있겠지?" 다크 로즈는 대화를 끊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당연하죠. 제 정보망이 얼마나 빵빵한데요. 그런데 박영희 씨는 어떻게 여기까지?"
"당연히 의뢰를 받았지. 킬러 세계에서 의뢰가 끊이지 않는 곳이 어디겠어? 블랙 길드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큰 힘을 가진 곳에서 말이야." 다크 로즈의 말끝에 묘한 여운이 남았다.
블랙 길드. 데싱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그들과 협력하는 것도, 그리고 그들의 의뢰를 받는 것도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은퇴를 위해서라면 뭐든 해야 할 판이었다.
"그렇군요. 뭐, 어쨌든 우리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네요. 최민준 제거. 자, 그럼 누가 먼저 잡는지 시합을 시작해 볼까요?"
데싱이 몸을 돌려 최민준의 예상 은신처로 향하려 할 때, 등 뒤에서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들렸다. 다크 로즈가 이미 움직인 것이었다. 그녀는 데싱보다 한 발 앞서 있었다.
"실력만 앞세우는 건 반칙 아닌가, 박영희 씨?" 데싱은 재빨리 몸을 피하며 외쳤다.
"반칙은 실력 없는 자들이나 하는 말이지." 다크 로즈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데싱은 쓴웃음을 지었다. 결국 이렇게 된 거, 그녀와의 경쟁은 피할 수 없었다. 그는 익숙한 속도로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었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이 번뜩였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과거를 숨기고, 킬러로서의 본능을 깨우는 순간이었다.
최민준의 별장은 외곽의 한적한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다. 으리으리한 저택이었지만, 어둠이 내려앉자 음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데싱은 능숙하게 경비 시스템을 무력화시키고 건물 안으로 잠입했다. 그의 발걸음은 소리 없이, 마치 유령처럼 움직였다.
"이런 곳에 숨어있을 줄이야. 역시 돈이 많으면 별장도 여러 개고 좋구만."
그는 최민준의 서재로 추정되는 방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고급스러운 가구들과 책들로 가득한 방 안. 책상 위에는 서류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또다시 날카로운 기척이 느껴졌다.
"왔군."
다크 로즈였다. 그녀는 이미 최민준의 방에 도착해 있었고, 마치 데싱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은색의 권총이 들려 있었다.
"먼저 와 있었군. 역시 빠르다니까." 데싱은 어깨를 으쓱했다.
"네놈이 어설프게 움직이는 동안, 나는 이미 목표물 근처까지 와 있었다." 다크 로즈는 최민준이 있을 만한 곳을 훑어보았다. "하지만… 이상하군."
"뭐가 이상하죠?"
"방금, 분명히 인기척을 느꼈는데." 다크 로즈가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았다.
그 순간, 책상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최민준이었다. 그는 데싱과 다크 로즈를 번갈아 보며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누… 누구냐!"
"최민준 씨, 오랜만입니다. 아니, 처음 뵙겠네요." 데싱은 능글맞게 웃었다. "오늘은 좀… 편안하게 쉬고 싶으신 날인가 봅니다."
"닥쳐! 네놈들 누구냐!" 최민준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닥치긴 누가 닥쳐. 당신이 닥치셔야 할 시간이야." 다크 로즈는 차갑게 말했다. 그녀는 권총을 최민준에게 겨누었다.
"잠깐만요, 박영희 씨!" 데싱이 소리쳤다. "이건 제 임무라고요. 우리끼리 싸우다가 의뢰인에게 찍히면 곤란하잖아요."
"흥. 네놈의 임무 따위 알 바 아니야." 다크 로즈는 데싱을 쏘아보았다.
"아니, 잠깐만요. 혹시… 최민준 씨의 뒤에 누가 있는지 아십니까?" 데싱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평소의 그라면 돈이 되는 정보라면 뭐든 캐내려 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의 머릿속에는 레시스턴이라는 의뢰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흘린 정보들은 언제나 애매했고, 묘한 의도가 숨겨져 있는 듯했다.
"무슨 소리야." 다크 로즈의 눈빛이 흔들렸다.
"최민준 씨가 이렇게 허술하게 있을 리가 없어요. 분명히… 누군가가 이 상황을 조작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데싱은 최민준을 쏘아보았다. "혹시… 레시스턴이라는 사람, 아십니까?"
최민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레시스턴?" 다크 로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녀 역시 그 이름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듯했다.
"그렇습니다. 제가 알기로 레시스턴은… 꽤나 악명 높은 정보 브로커죠. 돈과 정보를 이용해 사람들을 조종하는 걸 즐기는." 데싱은 최민준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저와 박영희 씨가 서로 싸우도록 유도하고, 결국은… 둘 다 제거하려는 심산이겠죠."
"말도 안 돼!" 최민준이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는 누가 하고 있죠?" 데싱은 최민준의 멱살을 잡았다. "당신, 레시스턴의 꼭두각시 아닙니까? 당신의 뒤에 있는 진짜 범인을 알고 싶다!"
그때, 다크 로즈가 데싱의 어깨를 툭 쳤다. "이제 그만해. 이 자는 네놈의 손에 죽어야 할 놈이야."
"아니요, 박영희 씨. 이번엔 좀 다릅니다." 데싱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 자를 살려둬야 합니다. 그래야 레시스턴의 계획을 알아낼 수 있어요. 그리고… 제 마지막 임무를 제 방식대로 끝낼 수 있습니다."
다크 로즈는 데싱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평소의 능글맞음 대신, 진지함과 날카로움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그의 말에 일말의 흥미를 느꼈다.
"네놈이… 평소와 다르군." 다크 로즈가 낮게 읊조렸다.
"그렇습니까? 뭐, 가끔은 저도 진지해질 때가 있거든요." 데싱은 씩 웃었다. "자, 그럼 어떻게 할까요? 이대로 최민준 씨를 보내줄까요? 아니면… 박영희 씨와 제가 손을 잡고 레시스턴을 상대해 볼까요?"
다크 로즈는 잠시 고민했다. 그녀의 목표는 김철수를 제압하는 것이었지만, 레시스턴이라는 이름은 그녀에게도 낯선 이름이 아니었다. 동생의 복수를 위해 킬러가 된 그녀에게, 레시스턴은 과거의 어떤 사건과도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좋아. 하지만 명심해. 네놈의 방식대로 하되, 내 앞에서 실수를 저지르면… 그땐 네 목숨을 걸고 책임져야 할 거야."
"알겠습니다. 그럼… 최민준 씨,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다음번엔… 좀 더 즐거운 만남이 되기를 바랍니다." 데싱은 최민준을 놔주었다. 최민준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
다크 로즈는 데싱에게 다가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 모든 게… 네놈의 함정일 수도 있어."
"함정이라면… 박영희 씨도 함께 빠지는 거겠죠. 뭐, 그래도 당신이라면… 꽤 재미있는 함정이 될 것 같습니다." 데싱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두 킬러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라이벌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서로를 신경 써야 하는 관계. 과거 킬러 양성소 동기였던 악연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서재 안에서, 두 사람의 눈빛은 마치 불꽃처럼 마주쳤다. 은퇴를 앞둔 킬러와, 업계 최고의 자리를 지키려는 라이벌. 그리고 그들 뒤에 숨어있는 거대한 음모. 마지막 임무는 이제 막, 더욱 복잡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