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무지개 빛깔의 외로움
밤하늘을 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기 고래 바우. 하지만 알록달록한 무지개 빛깔 때문에 다른 고래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늘 혼자였어요. 바우는 그런 자신의 모습에 슬픔을 느꼈답니다.
깊고 푸른 바닷속, 세상의 모든 색깔을 담은 듯 영롱한 무지개 빛깔을 자랑하는 아기 고래 바우가 살고 있었다. 바우의 꼬리가 살랑거릴 때마다 찬란한 빛의 파편들이 흩날렸고, 그 모습은 마치 살아있는 별똥별 같았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바우에게 축복이 아닌 저주였다. 다른 고래들은 바우의 화려한 빛깔에 눈이 부신 듯 피하기 일쑤였고, 함께 헤엄치고 싶다는 마음조차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
“바우야, 이리 와서 같이 놀자!”
용감한 물고기 떼가 바우에게 다가왔지만, 무지개 빛깔에 눈이 부신 듯 “아이고, 눈부셔!” 하며 도망가 버렸다. 바우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혼자 남겨졌다.
“왜 나는 이렇게 알록달록한 걸까…”
바우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다른 고래들은 짙은 푸른색이나 회색, 혹은 검은색으로 단조로운 멋을 뽐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바우에게는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도 그냥 평범한 고래였으면….’
바우는 오늘도 홀로 넓은 바다를 헤엄쳤다. 꼬리를 흔들 때마다 쏟아지는 무지개 빛은 마치 슬픔을 감추려는 듯 더욱 화려하게 빛났다. 바우는 솟아나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깊은 바닷속으로 잠겨들었다. 그곳은 햇빛이 잘 닿지 않아 어둡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곳이라면, 나의 빛깔도 조금은 덜 눈에 띄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품고서.
깊은 바닷속, 낯선 풍경이 바우의 눈앞에 펼쳐졌다. 기묘한 모양의 산호초와 형광빛을 내는 해초들이 마치 우주의 행성처럼 신비로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게다가 이곳에는 바우처럼 화려한 빛깔을 가진 생물들이 종종 나타나곤 했다. 옅은 푸른색이나 보라색, 혹은 은은한 금빛을 띠는 물고기들이었다. 바우는 혹시 이곳에서는 자신도 친구를 사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렘을 안고 조심스럽게 헤엄쳐 나갔다.
“저기… 안녕하세요?”
바우가 수줍게 말을 걸었지만, 그 순간 바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무지개 빛이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그 빛에 놀란 작은 물고기 몇 마리가 후다닥 숨어버렸다.
“어휴, 또 저 빛이야.”
한참을 헤엄쳐 가던 바우는 저 멀리 희미하게 빛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마치 작은 별이 바다에 떨어진 듯 영롱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호기심에 이끌려 다가간 바우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그곳에는 작고 반짝이는 별똥별 하나가 바닥에 누워 낑낑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별똥별의 날개 한쪽이 부러져 있었다. 작고 투명한 날개는 부서진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고, 별똥별은 아파서인지, 아니면 슬퍼서인지 연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저… 괜찮으세요?”
바우가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별똥별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커다란 눈망울에는 두려움과 함께 간절함이 뒤섞여 있었다.
“누… 누구세요?”
별똥별의 목소리는 마치 유리구슬이 부딪히는 듯 맑고 아름다웠지만, 그 안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나는 바우라고 해요. 당신은 누구세요? 왜 여기 바다 밑에 있는 거예요?”
“나는… 나는 비비예요. 하늘에서 길을 잃었어요. 너무 멀리 떨어져서… 길을 찾으려다가 그만…”
비비는 말을 잇지 못하고 다시 울먹였다. 부서진 날개를 보며 더욱 서럽게 울었다.
“하늘로 돌아가고 싶은데… 날개가 부러져서 다시는 날 수 없을 것 같아요.”
바우는 비비의 슬픈 이야기에 마음이 아팠다. 자신도 외롭지만, 비비만큼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바우는 비비를 돕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
“괜찮아요, 비비! 내가 도와줄게요!”
바우의 갑작스러운 외침에 비비는 눈물을 닦고 바우를 바라보았다.
“정말요? 어떻게…?”
“음… 어디서 들은 이야기인데, 아주 먼 북쪽 끝 하늘 바다에 ‘별빛 나침반’이라는 것이 있대요. 그걸 찾으면 길을 잃은 별들도 다시 하늘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해요!”
바우는 신이 나서 말했다. 사실 그 이야기는 어렴풋이 들었던 전설 같은 이야기였다.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비비를 위로하고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도 그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별빛 나침반이요…?”
비비의 눈이 반짝였다.
“네! 그러니까 우리 같이 그 별빛 나침반을 찾으러 가요! 북쪽 끝 하늘 바다로!”
바우는 비비의 작은 몸을 조심스럽게 등에 태웠다. 비비는 바우의 등 위에서 살짝 몸을 웅크렸다. 바우의 등은 따뜻했고, 무지개 빛깔은 비비에게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
“정말… 고마워요, 바우. 나 때문에 힘들 텐데….”
“아니에요! 내가 더 신나요! 비비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바우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처음으로 자신 때문에 누군가가 함께 나아갈 준비를 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바우에게 큰 기쁨이자 용기였다.
그렇게 아기 고래 바우와 별똥별 비비의 위대한 모험이 시작되었다. 목표는 오직 하나, 북쪽 끝 하늘 바다에 있다는 전설의 ‘별빛 나침반’을 찾는 것.
바우는 힘차게 꼬리를 저었다. 무지개 빛깔이 꼬리를 따라 흩뿌려지며 어두운 바닷속을 환하게 밝혔다. 비비는 바우의 등에 가만히 앉아 바우의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따스한 빛을 느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록 지금은 부서진 날개 때문에 하늘을 날 수 없었지만, 바우와 함께라면 다시 하늘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샘솟았다.
“바우야, 저기 봐! 저건 뭐지?”
비비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거대한 해초 숲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녹색의 거대한 숲처럼, 수많은 해초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와! 정말 멋지다!”
바우는 감탄하며 해초 숲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그 순간, 해초 숲 사이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바로 심술궂은 문어였다. 끈적끈적한 촉수에는 온갖 바다 쓰레기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동그란 눈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크큭… 이게 누구야? 여긴 내 구역인데… 낯선 녀석들이라니!”
문어는 자신의 촉수를 휘저으며 바우와 비비를 위협했다.
“저리 꺼지지 못해! 내 허락 없이는 아무도 이 숲을 지나갈 수 없다!”
바우는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비비도 바우의 등 위에서 겁에 질린 듯 바우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저… 저희는 북쪽 끝 하늘 바다로 가는 길인데요. 별빛 나침반을 찾으러 가는 중이에요.”
바우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
“별빛 나침반? 흥!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믿는 어리석은 녀석들이 있구나!”
문어는 코웃음을 치며 바우의 무지개 빛깔을 비웃었다.
“그 알록달록한 빛깔 때문에 눈이 부셔서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겠지! 꼴사납기는!”
바우는 문어의 말에 상처를 받았다. 또다시 자신의 빛깔 때문에 놀림을 당하는 것이 너무나 속상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비비… 우리 그냥 돌아갈까?”
바우가 시무룩하게 말하자, 비비가 바우의 등을 톡톡 두드렸다.
“아니야, 바우! 포기하지 마! 우리에게는 별빛 나침반이 필요하잖아!”
비비의 말에 바우는 다시 힘을 냈다.
“그래, 맞아! 우리는 꼭 별빛 나침반을 찾아야 해!”
바우는 문어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비켜요! 우리는 갈 길이 멀어요!”
“흥! 어디 한번 가보시지! 내 촉수에 걸리면 전부 끈적끈적한 먹물이 될 테다!”
문어는 징징거리는 소리를 내며 바우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더니 갑자기 커다란 먹물을 뿜어냈다. 칠흑 같은 먹물이 바우와 비비를 향해 쏟아졌다.
“으악!”
바우는 재빨리 몸을 피하려 했지만, 먹물은 순식간에 바우와 비비를 뒤덮었다.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었다.
“으… 끈적거려… 비비, 괜찮아?”
바우는 당황하며 비비를 찾았다. 그러나 비비는 이미 먹물 속에서 작게 빛나고 있었다.
“바우, 걱정 마! 내가 길을 밝혀줄게!”
비비는 부서진 날개에도 불구하고 온 힘을 다해 빛을 내뿜었다. 비비의 작은 빛은 칠흑 같은 먹물 속에서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길을 비추었다.
“비비…!”
바우는 비비의 빛을 따라 힘차게 헤엄치기 시작했다. 문어는 예상치 못한 비비의 빛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다시 끈적한 촉수를 휘저으며 바우를 쫓아왔다.
“크큭… 도망가봤자 소용없다! 내 촉수는 못 피할걸!”
하지만 바우는 비비가 밝혀주는 빛을 따라 맹렬하게 나아갔다. 어둠 속에서 바우의 무지개 빛깔과 비비의 작은 빛이 어우러져 묘한 광채를 뿜어냈다. 바우는 문어의 촉수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큭… 저 녀석, 보통내기가 아니군!”
문어는 바우의 속도에 당황하며 헛발질을 했다. 그러다 그만 자신의 촉수끼리 엉켜버리고 말았다.
“아이쿠! 이게 뭐야! 으악!”
문어는 엉킨 촉수를 풀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그만 해초 숲 깊숙한 곳으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휴… 겨우 빠져나왔다.”
바우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해초 숲을 벗어났다. 비비는 여전히 바우의 등 위에서 작게 빛나고 있었다.
“비비, 정말 고마워! 네 덕분에 살았어!”
“헤헤, 별말씀을요, 바우! 우리 이제 괜찮은 거지?”
“응! 이제 아무도 우리를 막지 못할 거야!”
바우는 비비를 등에 태우고 다시 힘차게 나아갔다. 문어와의 예상치 못한 만남은 조금 힘들었지만, 그 경험을 통해 바우는 비비와의 끈끈한 우정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서로를 의지하며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은 순간이었다.
얼마나 더 헤엄쳤을까. 바우와 비비는 거대한 바위 앞에 도착했다. 바위에는 수백 년은 족히 살아 보인 늙은 거북이가 느긋하게 햇볕을 쬐고 있었다. 그의 등껍질은 이끼로 뒤덮여 있었고, 눈빛은 깊은 지혜로 가득 차 있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바우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음… 그래, 반갑다. 너희는 어디서 오는 아이들이냐?”
늙은 거북이는 느릿느릿 눈을 뜨며 바우와 비비를 바라보았다.
“저희는 북쪽 끝 하늘 바다로 가고 있어요. 전설의 별빛 나침반을 찾으러요!”
“별빛 나침반이라… 허허, 그런 오래된 이야기를 아직도 믿는구나.”
늙은 거북이는 껄껄 웃었다.
“하지만… 너희의 그 간절한 마음이라면, 어쩌면 찾을 수도 있겠지. 북쪽 끝 하늘 바다는 아주 멀고 험한 곳이니, 길을 잘 찾아가야 할 게다.”
“길이요? 혹시… 길을 아세요?”
바우의 눈이 반짝였다.
“음… 내가 젊었을 때, 아주 먼 옛날에 그곳에 가본 적이 있긴 하지. 하지만 길을 알려주기 전에, 너희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구나.”
늙은 거북이는 바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너의 그 알록달록한 빛깔 말이다. 왜 그렇게 슬퍼하는 게냐? 그 빛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아름다움인데.”
바우는 늙은 거북이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저는… 저는 이 빛깔 때문에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요. 모두 저를 피하기만 하고… 저는 그냥 평범한 고래가 되고 싶어요.”
바우는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평범함이라… 허허. 세상에 ‘평범한’ 것이란 원래 없는 법이지. 모두 저마다의 특별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란다. 너의 그 무지개 빛깔은, 어쩌면 너만이 가진 아주 특별한 능력일지도 모른단다.”
늙은 거북이의 말은 바우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특별한 능력이라니…?’ 바우는 처음으로 자신의 빛깔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제 빛깔 때문에 오히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지. 그리고… 너희의 여정에는 아직 많은 것이 남아 있단다. 부디 용기를 잃지 말고, 서로를 믿고 나아가거라.”
늙은 거북이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우와 비비를 바라보았다.
“길은… 저 깊은 해류를 따라 북쪽으로 계속 나아가면 된다. 하지만 조심해라. 그곳에는 너희의 앞길을 가로막는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늙은 거북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느긋하게 눈을 감았다. 바우는 늙은 거북이의 말을 곱씹으며 다시 한번 힘을 냈다. 자신의 빛깔이 특별하다는 말, 그리고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 그 말들이 바우의 마음에 작은 씨앗처럼 심어졌다.
“고마워요, 할아버지! 우리는 꼭 해낼 거예요!”
바우는 늙은 거북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비비를 등에 태운 채 다시 북쪽을 향해 헤엄쳐 나갔다. 깊고 푸른 바다는 여전히 넓었고, 앞으로 펼쳐질 여정은 알 수 없었지만, 바우의 마음속에는 작은 희망과 함께 묘한 설렘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비비 또한 바우의 든든한 등에 기대어, 희미하게 빛나는 눈망울로 북쪽 하늘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