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벚꽃 아래, 차가운 시선

화사한 벚꽃이 만개한 봄날, 유명 관광지에서 인기 배우 강민준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현장은 아름다운 풍경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사건의 시작을 알린다.

6 min read

벚꽃이 터질 듯 만개한 어느 봄날이었다. 분홍빛 구름이 지상을 뒤덮은 듯한 풍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특히 이곳, 남산의 벚꽃 터널은 매년 봄이면 전국에서 몰려든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갓 피어난 꽃잎처럼 싱그러운 공기 속에는 달콤한 꽃향기와 함께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그때, 귓가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는 이 황홀한 봄날의 잔치를 산산조각 냈다.

“악! 이게 뭐야!”

“사람 살려!”

순식간에 환호성은 공포로 변했고, 아름다운 벚꽃 터널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몰려들었고, 곧이어 경찰 사이렌 소리가 벚꽃잎처럼 흩날리기 시작했다.

사건 현장은 남산의 한적한 산책로, 벚꽃이 절정을 이룬 곳이었다. 화사한 꽃잎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가운데, 차갑게 식어버린 한 남자의 시신이 쓰러져 있었다. 그의 이름은 강민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톱스타이자, 수많은 여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바로 그 배우였다. 한때는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종횡무진하며 환한 미소를 짓던 그의 얼굴은 이제 생기를 잃고 차갑게 굳어 있었다. 붉은 피가 벚꽃잎처럼 흩뿌려진 그의 옷은, 아름다운 풍경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섬뜩한 그림을 완성했다.

“이런, 이런. 벚꽃이 참 예쁘게도 피었네. 근데 하필이면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지, 강민준 씨.”

현장에 도착한 지손은 흩날리는 벚꽃잎을 손으로 받으며 중얼거렸다. 그의 낡은 트렌치코트는 벚꽃 향기 대신 먼지 냄새를 풍겼고, 구겨진 넥타이는 그의 헝클어진 머리카락만큼이나 산만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은 달랐다. 벚꽃처럼 화사한 풍경 속에 놓인 차가운 시신을 응시하는 그의 눈은, 마치 어두운 밤하늘의 별처럼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지손 씨, 또 늦으셨군요.”

박서장이 지손을 향해 퉁명스럽게 말했다. 언제나 단정하게 정돈된 머리와 깔끔한 정장 차림의 박서장은, 지손의 자유분방함과는 극과 극이었다. 그는 지손의 등장에 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늦었다니요, 서장님. 제가 딱 맞춰 온 거 아닙니까. 벚꽃이 만개한 이 순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강민준 씨를 보내드리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조절했지요.”

지손은 능글맞게 웃으며 박서장의 어깨를 툭 쳤다. 박서장은 질색하며 지손의 손을 쳐냈다.

“흥, 헛소리 마시고. 빨리 현장이나 제대로 보시죠. 이번 사건, 보통이 아닙니다. 유명인 살해 사건이라고요. 언론은 이미 들끓고 있고, 위에서는 압력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박서장의 얼굴에는 피로와 짜증이 뒤섞여 있었다. 지손은 그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사건이 얼마나 복잡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피해자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지손은 흩날리는 벚꽃잎을 헤치며 시신 쪽으로 다가갔다. 피해자 강민준은 엎드린 채 쓰러져 있었다. 그의 등에는 깊은 상처가 나 있었고, 그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는 벚꽃잎과 뒤섞여 붉은 융단처럼 바닥을 뒤덮고 있었다.

“사인은 명백한 자상으로 보이네요. 흉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현장은 꼼꼼히 수색했지만, 흉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치 안개처럼 사라진 것 같더군요.”

박서장의 말에 지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개라… 벚꽃잎이 날리는 이 순간, 참으로 시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군요. 하지만 범인은 시인이 아니라 살인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손은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벚꽃 터널은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지만, 사건 현장 주변은 경찰 통제선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흩날리는 벚꽃잎들을 유심히 살폈다. 마치 흩어진 단서들처럼, 그의 시선은 벚꽃잎 하나하나를 쫓았다.

“용의자는 누구입니까?”

“일단 강민준 씨의 비서인 김 비서가 유력합니다. 피해자와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고, 평소에도 둘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김 비서라… 성격은 어떻습니까?”

“냉철하고, 계산적입니다. 피해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어딘가 숨겨진 야망이 느껴지는 인물이었죠. 하지만 알리바이가 완벽합니다. 사건 발생 추정 시각에는 다른 곳에 있었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지손은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한 알리바이라. 탐정에게는 언제나 가장 골치 아픈 부분이었다.

“다른 용의자는 없습니까?”

“아직은 없습니다. 하지만 강민준 씨는 워낙 유명인이었으니, 원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끝도 없겠죠.”

박서장은 한숨을 쉬었다. 지손은 흩날리는 벚꽃잎을 털어내며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이 한쪽 구석, 좀 떨어진 곳에 멈췄다.

“저기… 저 여성은 누구입니까?”

지손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군중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여성이 서 있었다. 그녀는 벚꽃처럼 화사한 봄날에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긴 생머리는 바람에 부드럽게 흩날렸고, 하얀 얼굴에는 묘한 슬픔과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녀는 마치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홀로 고요했다.

“아, 그분은… 강민준 씨의 오랜 팬이라고 합니다. 사건 발생 직후, 가장 먼저 시신을 발견하고 신고한 분이죠.”

“팬이라… 혹시 이름이?”

“서연 씨라고 합니다. 이름은 서연.”

서연. 그 이름이 지손의 귓가에 맴돌았다. 그는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녀의 맑고 깊은 눈동자는 벚꽃 아래 숨겨진 무언가를 말하는 듯했지만, 지손은 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그녀는… 뭔가 알고 있는 것 같군요.”

지손의 말에 박서장은 코웃음을 쳤다.

“지손 씨, 또 망상에 빠지셨군요. 그녀는 그냥 충격받은 팬일 뿐입니다. 이번 사건은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할 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사건입니다. 괜한 곳에 정신 팔지 마십시오.”

“괜한 곳이라니요, 서장님. 저 아름다운 여성이야말로 이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벚꽃 아래, 차가운 시선이라… 참 아이러니한 풍경이지 않습니까?”

지손은 옅은 미소를 띠며 다시 벚꽃잎을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사건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서연이라는 이름의 여인에 대한 묘한 호기심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벚꽃처럼, 그의 마음에도 잔잔한 떨림이 시작된 것이었다.

“어서 가보시죠, 지손 씨. 김 비서가 경찰서로 왔습니다. 그의 증언을 들어봐야 합니다.”

박서장의 재촉에 지손은 아쉬운 듯 서연에게서 눈을 떼고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여전히 벚꽃 아래, 차갑게 식어버린 강민준의 시신과 그 곁을 지키던 신비로운 여성, 서연의 모습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경찰서 안은 사건 현장과는 또 다른 긴장감이 감돌았다. 지손은 박서장의 뒤를 따라 취조실로 향했다. 취조실 안에는 검은색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의 표정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눈빛은 날카로웠다. 그는 바로 피해자의 비서, 김 비서였다.

“강민준 씨의 비서 김성철 씨입니다. 김 비서, 이쪽은 탐정 지손 씨입니다. 이번 사건 수사를 돕게 되었습니다.”

박서장의 소개에 김 비서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의 눈빛은 지손을 훑어보았지만,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안녕하십니까. 김성철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어딘가 기계적인 느낌이 들었다. 지손은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넥타이를 풀었다.

“김 비서님, 먼저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게 되어 유감입니다. 강민준 씨와는 얼마나 오래 일하셨습니까?”

“5년입니다.”

“5년이라… 그럼 누구보다 강민준 씨를 잘 아시겠군요. 혹시 강민준 씨와 최근에 특별한 갈등이나 문제가 있었습니까?”

김 비서는 잠시 침묵했다. 그의 눈빛이 아주 잠깐 흔들리는 듯했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특별한 문제는 없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강민준 씨의 곁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최선이라… 하지만 몇몇 증언에 따르면, 강민준 씨가 최근 김 비서님께 불만을 표출했다고 합니다. 혹시 금전적인 문제라도 있었습니까?”

지손의 날카로운 질문에 김 비서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그것은… 오해입니다. 강민준 씨는 가끔 예민해지실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사소한 일들로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사소한 일이라… 그렇다면 사건 당일, 강민준 씨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김 비서님이 맞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저는 오후 3시경, 강민준 씨의 일정을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사무실로 복귀했습니다. 그 후로는 강민준 씨와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실로 복귀한 시간은 정확히 몇 시입니까?”

“오후 3시 15분경이었습니다.”

“그때 사무실에는 누가 있었습니까?”

“저 혼자였습니다.”

지손은 김 비서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그의 알리바이는 완벽했다. 하지만 그의 태도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긴장감은 지손의 의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김 비서님, 강민준 씨의 개인적인 물건 중에 혹시 특별히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습니까? 예를 들어, 다이어리라든지, 혹은… 열쇠 같은 것 말입니다.”

김 비서의 눈이 순간 커졌다. 그는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며 대답했다.

“특별히 신경 쓰이는 물건은 없었습니다. 강민준 씨는 깔끔한 성격이라 모든 것을 제자리에 두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강민준 씨의 책상 위에는 늘 무언가가 어지럽혀져 있었다는 증언도 있습니다만.”

지손은 김 비서의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 그것은… 아마도 강민준 씨가 작업 중이던 자료들일 겁니다.”

김 비서는 말을 더듬었다. 지손은 그의 흔들리는 눈빛을 똑바로 응시했다.

“김 비서님, 범인은 벚꽃처럼 아름다운 순간에, 차가운 칼날로 강민준 씨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그 칼날은 어디에 있을까요? 혹시… 김 비서님께서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김 비서는 차가운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무언가를 망설이는 듯했다. 지손은 그의 반응을 기다리며 조용히 숨을 죽였다. 벚꽃 향기가 짙게 배어 나오는 봄날, 차가운 취조실 안에서 또 다른 긴장감이 맴돌기 시작했다. 벚꽃 아래, 숨겨진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지손은 다시 한번, 흩날리는 벚꽃잎처럼 복잡하게 얽힌 사건의 실마리를 쫓기 시작했다. 그의 괴짜 같은 추리가, 이 아름다운 봄날의 비극을 어떻게 풀어낼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