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퇴마사의 등장
인간을 해치는 요괴들을 쫓는 냉철한 퇴마사 백익은 연화의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다. 그는 연화가 단순한 요괴가 아닌, 인간의 간을 탐하는 위험한 구미호임을 알아차리고 그녀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백익의 등장은 연화의 평온한 나날에 균열을 일으킨다.
밤은 깊었고, 도성은 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촛불 하나에 의지한 백익의 눈빛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낡았지만 예리한 검이 들려 있었다. 검날에는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은은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백익은 며칠째 연화의 흔적을 쫓고 있었다. 인간의 간을 탐하는 요괴, 그것도 천 년 묵은 구미호의 기운은 도성 곳곳에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 기운… 단순한 요괴가 아니야. 인간의 간을 탐하는 자, 반드시 그 죄를 물을 것이다.”
백익은 낮게 읊조리며 좁은 골목길을 헤쳐 나갔다. 그의 귓가에는 뱀의 허물 벗는 소리처럼 섬뜩한 기운이 맴돌았다. 연화가 남긴 흔적은 마치 짙은 향수처럼 그의 코끝을 스쳤다. 달콤하면서도 치명적인, 쾌락과 죽음의 향기였다.
연화는 화려한 기생집에서 연회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비단옷은 그녀의 매혹적인 몸매를 감싸 안았고, 붉은 입술은 웃음기 머금은 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인간들의 칭찬과 찬사를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백익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녀를 꿰뚫었다.
“저 여인… 보통이 아니야.”
백익은 연화의 눈빛에서 인간의 것이 아닌, 야수의 날카로움을 보았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덫이었고, 그녀의 미소는 먹잇감을 유혹하는 거짓이었다. 그는 연화가 인간의 간을 먹고 힘을 키운 구미호임을 직감했다.
“이 밤을 넘기지 않으리라.”
백익은 연화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의 발걸음은 조용했지만, 숲을 가로지르는 맹수의 발걸음처럼 위압적이었다. 연화는 갑자기 등골이 오싹함을 느꼈다. 그녀는 홀린 듯 고개를 돌렸고, 어둠 속에서 자신을 꿰뚫어 보는 백익과 눈이 마주쳤다.
“누구냐!”
연화는 순간적으로 경계심을 드러냈지만, 이내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백익에게 다가갔다.
“이 밤, 귀한 손님이 오셨군요. 이 몸, 연화라 하옵니다. 어서 제 곁으로 오시지요.”
그녀는 술잔을 들어 백익에게 내밀었다. 술잔에는 붉은 빛이 감돌았고, 그 안에는 인간의 피가 섞인 듯한 묘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백익은 연화의 손길을 뿌리쳤다.
“요괴여. 네 죄악을 알기에, 나는 너를 이곳에 둘 수 없다.”
백익의 말에 연화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녀의 눈빛은 차갑게 변했고, 꼬리가 살짝 흔들렸다.
“요괴라니요? 저는 그저 이 밤을 즐기는 한낱 기생일 뿐입니다. 당신, 저를 오해하시는군요.”
“오해? 인간들의 간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나는 너를 의심하지 않았다. 네 붉은 입술 아래 숨겨진 진실을 안다.”
백익은 검을 뽑아 들었다. 검날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은 연화의 얼굴을 비추었고, 그녀의 아름다움 속 감춰진 본질을 드러내는 듯했다. 연화는 더 이상 속일 수 없음을 깨닫고, 순식간에 본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눈동자는 불꽃처럼 타올랐고, 날카로운 발톱이 튀어나왔다.
“그래, 내가 구미호다! 인간들의 간으로 힘을 키운, 이 밤의 주인이다!”
연화는 포효하며 백익에게 달려들었다. 그녀의 몸짓은 바람처럼 날카로웠고, 발톱은 백익의 검과 부딪히며 불꽃을 튀겼다. 백익은 침착하게 그녀의 공격을 막아내며 반격했다. 두 존재의 격돌은 밤의 정적을 깨뜨리고 맹렬한 기세로 이어졌다.
백익은 연화의 힘에 놀랐다. 그녀의 공격은 단순한 요괴의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간을 먹으며 강해진 그녀의 힘은 백익조차도 쉽게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연화의 맹렬한 공격 속에서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두려움, 그리고… 슬픔.
‘이 여우, 단순히 쾌락만을 쫓는 것이 아니었나?’
백익은 연화의 눈빛에서 복잡한 감정을 읽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연화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임무를 잊지 않았다. 요괴는 반드시 정화해야 할 존재였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다, 구미호!”
백익은 검에 힘을 집중하며 연화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 연화의 어머니, 아랑이 나타났다. 아랑은 딸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졌다.
“내 딸을 건드리지 마라!”
아랑은 연화와 백익 사이에 서서 막아섰다. 그녀의 눈빛은 딸을 향한 모성애로 가득 차 있었지만, 백익을 향한 분노 또한 숨기지 않았다. 백익은 갑작스러운 아랑의 등장에 당황했지만, 곧 그녀가 연화의 어머니임을 알아차렸다.
“어머니…?”
연화는 놀라 입을 열었다. 아랑은 연화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백익을 노려보았다.
“이 아이는 아직 어린 구미호일 뿐입니다. 아직 인간의 세상에 익숙지 않아 실수를 했을 뿐이지요.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자비? 인간의 간을 탐하는 요괴에게 자비란 없다. 요괴는 요괴일 뿐,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는 존재는 용서받지 못한다.”
백익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인간을 해치는 요괴에 대한 혐오감이 역력했다. 아랑은 백익의 말을 들으며 딸을 더욱 꽉 안았다.
“이 아이는… 너와 다르다. 이 아이는… 사랑을 알게 될 것이다.”
아랑의 말에 백익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랑? 요괴가 사랑을 안다고? 그의 머릿속에는 과거의 상처가 떠올랐다. 요괴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던 기억. 그 기억은 그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요괴에 대한 증오심을 더욱 불태웠다.
“사랑? 요괴가 사랑을 논하는가. 그것은 위선일 뿐이다.”
백익은 아랑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는 다시 검을 뽑아 들며 아랑에게 달려들었다. 아랑은 딸을 뒤로 숨기고 백익과 맞섰다. 두 존재의 싸움은 더욱 격렬해졌다. 아랑은 딸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부었고, 백익은 요괴를 정화하겠다는 사명감으로 싸웠다.
싸움이 격해질수록 연화는 혼란스러웠다.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싸우는 모습, 그리고 자신을 쫓는 퇴마사의 날카로운 눈빛. 그녀는 처음으로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 백익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알 수 없는 연민.
‘이것이… 인간의 감정인가?’
연화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낯선 감정에 당황했다. 인간의 간을 먹으며 힘을 키웠지만, 그럴수록 인간적인 감정은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더 이상 단순한 요괴가 아님을 깨달았다.
치열한 싸움 끝에, 아랑은 결국 백익의 검에 쓰러졌다. 그녀는 마지막 힘을 짜내 연화에게 말했다.
“연화… 너는… 너는… 승천해야 한다…”
아랑은 딸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연화는 어머니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처음으로 진정한 슬픔을 느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머니…!”
연화는 절규하며 어머니의 시신을 끌어안았다. 백익은 아랑의 죽음을 보며 잠시 망설였다. 그는 요괴를 죽이는 것에 익숙했지만, 모성애로 딸을 지키다 죽은 아랑의 모습은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어머니… 왜… 나를 위해…”
연화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무력함을 느꼈다. 그녀는 더 이상 인간의 간을 탐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죄책감에 휩싸여 있었다.
백익은 연화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의 눈빛은 이전과는 달랐다. 차가움 대신 연민이, 분노 대신 슬픔이 느껴졌다.
“너의 어머니는… 너를 진정으로 사랑했다.”
백익은 연화에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너의 어머니는 네가 인간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길 바랐다. 그래서 자신의 목숨을 바쳐 너를 구한 것이다.”
연화는 백익의 말을 들으며 어머니의 희생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그녀는 어머니의 사랑을 깨달았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했다.
“저는…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
연화는 백익에게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너는 이제 승천해야 한다. 너의 어머니가 너에게 준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백익은 연화에게 말했다. 그는 연화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너를 돕겠다.”
연화는 백익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처음으로 인간에게서 온정을 느꼈다. 백익의 손은 차가웠지만, 그 안에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승천이란… 무엇인가요?”
연화는 백익에게 물었다. 그녀는 승천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승천은… 인간의 번뇌를 벗어나 신성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너는 이제 더 이상 요괴도, 인간도 아닌 존재가 될 것이다.”
백익은 연화에게 말했다. 그의 눈빛은 깊고 고요했다.
“그리고… 너의 어머니는… 너에게 진실을 전하라고 했다.”
연화는 백익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어머니가 전하라는 진실이라니. 그녀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진실… 이라니요?”
“그래. 너는… 인간과 요괴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다.”
백익의 말에 연화는 충격을 받았다. 인간과 요괴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라니. 그것은 그녀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진실이었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너의 어머니, 아랑은… 인간이었다. 그리고 너의 아버지… 그는… 요괴였다.”
백익은 연화에게 충격적인 진실을 말했다. 연화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인간과 요괴의 피를 모두 가진 존재였다.
“아버지…?”
연화는 자신의 아버지가 요괴였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자신이 완전한 요괴라고 생각했다.
“그래. 너는… 인간의 간을 탐했지만… 동시에 인간의 사랑을 갈망했다. 그것은… 네 안의 인간적인 본능 때문이었다.”
백익은 연화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눈빛에는 연민과 이해가 담겨 있었다.
“이제… 너는 선택해야 한다. 인간의 번뇌를 벗어나 승천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세상에 남아 슬픔을 안고 살아갈 것인가.”
백익은 연화에게 마지막 선택을 맡겼다. 연화는 어머니의 희생과 백익의 도움으로 승천의 기회를 얻었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해야 했다. 밤은 깊었고, 도성은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연화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준 백익의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