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뒤죽박죽된 동화 나라
빨간 망토는 늑대에게 쫓기는 대신 엉뚱한 길을 가고, 신데렐라는 유리 구두 대신 고무신을 신고 나타난다. 서준은 원래 이야기대로 흘러가지 않는 동화 속 세상에 어리둥절하며, 이 혼란을 바로잡으려 하지만 그의 어설픈 개입은 상황을 더욱 꼬이게 만든다.
시간의 강 한가운데에 떨어진 김서준 작가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찰랑이는 물결은 닿을 때마다 간질간질한 느낌을 주었고, 그의 몸은 마치 젤리처럼 흐물거리는 듯했다. ‘이게 대체 뭐야? 내가… 내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그는 흐느적거리는 팔다리를 주무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옅은 안개가 자욱한 이곳은 낯설었지만, 어딘가 동화 속 풍경 같기도 했다.
그때, 저 멀리서 앙증맞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나,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서준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붉은 망토를 뒤집어쓴 작은 소녀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길가에 서 있었다. ‘빨간 망토?’ 서준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분명 빨간 망토 이야기는 숲길에서 늑대를 만나는 게 정석인데, 이 소녀는 늑대는커녕 엉뚱한 길로 접어든 듯 보였다.
“저, 저기요!” 서준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빨간 망토는 화들짝 놀라며 서준을 바라보았다. “누, 누구세요?”
“저는 김서준이라고 합니다. 혹시 길을 잃으셨어요?” 서준은 최대한 친절하게 물었다. 동화 작가로서 이런 상황은 익숙해야 할 터였지만, 시간의 강에 빠져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네, 할머니 댁에 가야 하는데… 숲길이 너무 이상해서요.” 빨간 망토는 울먹이며 말했다. “갑자기 길이 꼬불꼬불하더니, 이상한 꽃들이 피어나고… 늑대 아저씨도 안 보이고요.”
‘늑대 아저씨가 안 보인다고? 이건 분명 원래 이야기가 아니야!’ 서준은 직감했다. ‘내가 시간의 강에 빠진 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 그의 머릿속은 온갖 동화들이 뒤죽박죽 섞여 돌아가는 듯했다.
“괜찮아요. 제가 도와줄게요.” 서준은 용기를 내어 빨간 망토에게 다가갔다. “이쪽으로 오세요. 제가 할머니 댁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줄게요.”
빨간 망토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서준의 손을 잡았다. 서준은 왠지 모를 책임감을 느끼며 소녀를 이끌고 걸음을 옮겼다. ‘좋아, 일단 이 소녀를 원래 이야기대로 할머니 댁에 보내는 것부터 시작하자.’
그런데 걷다 보니 이상한 점이 더 많았다. 분명 숲길이어야 하는데, 길가에는 형형색색의 마카롱 가게와 솜사탕 부스가 늘어서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다람쥐 옷을 입고 있거나, 토끼 귀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 마치 동화와 현실이 뒤섞인 듯한 기묘한 풍경이었다.
“와… 세상에, 저거 봐!” 빨간 망토가 갑자기 탄성을 질렀다.
서준이 빨간 망토가 가리키는 쪽을 보았다. 커다란 호박 마차가 멈춰 서 있었고, 그 옆에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울상을 짓고 있었다.
“신데렐라잖아?” 서준은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그런데 왜 저렇게 슬퍼하는 거지? 그리고… 저 유리 구두는 어디 가고 고무신을 신고 있는 거야?’
신데렐라는 서준을 발견하고 총총 다가왔다. “저기, 혹시 제 유리 구두 못 보셨어요? 무도회장에 가야 하는데… 엉엉.”
서준은 할 말을 잃었다. ‘유리 구두가 사라지고, 고무신을 신고 있다고? 대체 이 동화 나라는 어떻게 된 거야?’ 그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안절부절못했다.
“아… 음… 혹시 신발 가게에 가보셨어요?” 서준은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다.
신데렐라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발 가게요? 무도회장 옆에 있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그곳은 이미 문을 닫았어요.”
‘이런, 내가 또 일을 그르쳤군.’ 서준은 스스로의 어설픔에 한숨을 쉬었다. 원래대로라면 신데렐라는 왕자님과 무도회장에서 만나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지금은 유리 구두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때, 빨간 망토가 서준의 팔을 잡아끌었다. “작가님, 빨리 가요! 할머니 댁에 늦겠어요!”
“아, 맞다! 빨간 망토!” 서준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빨간 망토를 이끌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뒤에서는 신데렐라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듯했다.
숲길은 더욱 기괴하게 변해갔다. 나무들은 알록달록한 색깔로 칠해져 있었고, 나뭇잎 대신 팝콘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서준은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이건 내가 알던 동화 세계가 아니야. 뭐랄까… 동화들이 전부 짬뽕된 것 같달까?’
“작가님, 저기… 늑대 아저씨 아니에요?” 빨간 망토가 손가락으로 저 멀리 있는 무언가를 가리켰다.
서준은 빨간 망토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다. 떡갈나무 아래, 커다란 늑대가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늑대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했다. 늑대는 털이 복슬복슬한 대신, 말끔한 양복을 차려입고 있었다. 게다가 손에는… 족집게와 돋보기를 들고 있었다.
“저 늑대는 뭐 하고 있는 거죠?” 빨간 망토가 물었다.
서준은 돋보기를 든 늑대의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늑대는 무언가를 꼼꼼하게 살피는 듯했다. 그것은 바로… 숲길에 떨어진 나뭇잎 조각들이었다.
‘이건 절대 늑대의 행동이 아니야!’ 서준은 기겁했다. ‘원래 늑대는 빨간 망토를 잡아먹으려고 달려들어야 하는데, 지금은 뭐 하는 거야? 숲길 청소라도 하는 건가?’
그 순간, 늑대가 고개를 들었다. 늑대의 눈빛은 교활하기보다는, 뭔가 지루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흠… 그래서, 꼬마 아가씨는 어디로 가시나?” 늑대가 능글맞게 물었다.
“저, 저기… 할머니 댁에 가고 있어요.” 빨간 망토가 겁먹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할머니 댁이라… 이 길은 좀 험할 텐데. 내가 안내해 줄까?” 늑대가 껄껄 웃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빨간 망토는 질색하며 서준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
서준은 늑대의 수상한 행동에 더욱 의심스러워졌다. ‘이 늑대도 뭔가 이상해. 동화 속 악당이라면 좀 더 악당답게 굴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때, 늑대의 시선이 서준에게 향했다. 늑대의 눈이 번뜩였다. “오호라… 네 녀석은 누구냐? 이 숲에 처음 보는 녀석인데.”
“저는… 김서준이라고 합니다.” 서준은 왠지 모를 위압감에 몸이 굳었다.
“김서준이라고? 흥. 어쨌든 이 숲은 내 구역이야. 내 허락 없이는 아무도 지나갈 수 없지.” 늑대가 으르렁거렸다.
‘내 구역이라고? 늑대가 무슨 숲의 주인 행세를 해?’ 서준은 어이가 없었다. ‘그래, 이 동화 세계는 정말이지 총체적 난국이구나.’
서준은 빨간 망토를 데리고 늑대를 피해 서둘러 달아났다. 숲길은 점점 더 기괴해졌다. 나무에서는 과자 봉지가 열리고, 길가에는 젤리 곰들이 떼를 지어 다녔다. 마치 동화 캐릭터들이 전부 파업이라도 한 것처럼,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엉뚱한 행동만 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돼. 내가 이 뒤죽박죽된 동화 세계를 바로잡아야 해!’ 서준은 결심했다. ‘하지만 어떻게?’
그는 시간의 강에 빠지기 전, 자신이 썼던 동화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의 동화들은 너무 평범하고, 예측 가능한 이야기들뿐이었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어쩌면… 내가 동화를 제대로 만들지 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걸지도 몰라.’
그때, 그의 머릿속에 강렬한 이미지가 스쳐 지나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남자. 그는 분명 동화 속 악당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단순한 악의가 아닌, 깊은 슬픔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 남자는 누구지? 그리고 왜 나는 그를 떠올리는 거지?’ 서준은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발밑에서 무언가 단단한 것이 밟혔다. 서준은 고개를 숙여 그것을 주워 들었다. 그것은… 낡은 가죽 표지의 책이었다. 책 표지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특별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게 뭐지?” 서준이 책을 펼치자, 책갈피 사이에 끼워져 있던 작은 종이 조각이 툭 떨어졌다.
종이 조각에는 붉은색 잉크로 휘갈겨 쓴 글씨가 있었다.
“시간의 강을 되돌릴 열쇠는… 가장 어두운 곳에 잠들어 있다.”
“가장 어두운 곳?” 서준은 혼잣말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숲은 점점 더 짙은 어둠에 잠겨들고 있었다.
“작가님, 저기 좀 보세요!” 빨간 망토가 다급하게 외쳤다.
서준이 빨간 망토가 가리키는 쪽을 보았다. 숲의 가장 깊은 곳, 어둠이 짙게 드리운 곳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저곳인가?’ 서준은 심호흡을 하고 빨간 망토를 데리고 빛이 새어 나오는 곳으로 향했다.
빛이 나오는 곳에 도착하자, 서준은 숨을 멈췄다. 그곳에는 거대한 동굴이 있었고, 동굴 안에는… 칠흑 같은 갑옷을 입은 남자가 불꽃처럼 타오르는 붉은 눈으로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검은색 열쇠가 들려 있었다.
“카인…” 서준은 그 남자의 이름을 떠올렸다. 그는 자신이 쓴 동화 속 악당, ‘어둠의 왕자 카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원래 이야기대로라면 빨간 망토를 잡아먹고 동화 세계를 파괴해야 할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 그는… 시간의 강을 되돌릴 열쇠를 쥐고 있었다.
카인은 서준과 빨간 망토를 발견하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흥. 예상치 못한 손님이군. 네 녀석이 시간의 강에 빠진 동화 작가인가?”
“당신… 당신이 이 동화 세계를 이렇게 만든 겁니까?” 서준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카인은 껄껄 웃었다. “내가? 천만에. 이 혼란은 너희들의 나약함과 어리석음이 만들어낸 결과다. 나는 단지… 이 질서를 바로잡으려는 것뿐.”
“질서요?” 서준은 어이가 없었다.
“그래. 원래 동화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나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면 되지.” 카인은 열쇠를 손에 쥐고 빙글 돌렸다. “이 열쇠가 바로 그 시작이다.”
빨간 망토는 겁에 질려 서준의 등 뒤로 숨었다. 서준은 카인의 눈빛에서 단순한 악의가 아닌, 깊은 고독과 슬픔을 느꼈다. ‘이 남자는… 대체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 걸까?’
카인은 서준을 빤히 쳐다보았다. “흥미롭군. 너처럼 어리석지만, 무언가에 필사적인 녀석은 오랜만에 보는군. 좋다. 너의 그 어설픈 정의감을 한번 시험해 주마.”
그 순간, 카인은 갑자기 열쇠를 허공에 던졌다. 열쇠는 붉은 빛을 뿜으며 허공을 가르더니, 숲의 가장 깊은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
“안 돼!” 서준은 외쳤다.
“가져가 보시지.” 카인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명심해라. 그 열쇠를 손에 넣는 순간, 너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카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서준은 멍하니 서 있었다. 그는 시간의 강을 되돌릴 열쇠를 찾으려 했지만, 오히려 가장 강력한 악당과 엮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악당은 자신을 시험하며,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라고 부추기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서준은 혼란스러웠다. 뒤죽박죽된 동화 세계를 바로잡아야 하는 건지, 아니면 카인의 말대로 다른 선택을 해야 하는 건지. 그의 마음은 점점 더 깊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