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무인도 표류, 운명의 시작
고래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박사 J를 토해낸다. 그는 낯선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다. 망연자실한 순간, 그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깊고 푸른 바다의 품에 안겨 잔잔한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었던 박사 J는, 끔찍한 악몽에서 깨어나듯 정신을 차렸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과, 낯설기만 한 해변이었다. 마지막 기억은 거대한 고래의 입 안, 어둡고 축축한 공간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그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이…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정신을 차린 박사 J는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그의 몸은 끈적이는 액체와 모래로 뒤덮여 있었고, 뱃속에서는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고래 뱃속에서의 경험은 실로 기상천외했다. 마치 소화기관 같기도 하고, 거대한 동굴 같기도 한 그곳에서 그는 며칠을 보냈는지, 시간 감각조차 무뎌져 있었다. 다행히 고래는 그를 소화시키려는 의도가 없어 보였고, 오히려 그의 엉뚱한 행동에 ‘에라 모르겠다’라는 듯 묵묵히 헤엄쳐 다녔다. 그는 고래의 뱃속을 탐험하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대의 유물이라도 있을까 두리번거렸지만, 발견한 것은 그저 소화 중인 생선 찌꺼기들과 정체불명의 해초뿐이었다.
“아무래도 이 녀석, 나를 삼킨 걸 후회하는 모양인데?”
그때, 거대한 움직임과 함께 뱃속이 흔들렸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격렬한 흔들림에 박사 J는 비명을 질렀다. 그의 몸은 허공에 붕 떴다가, 쿵 하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눈앞이 캄캄해졌다가, 다시 밝아질 때쯤 그는 해변에 누워 있었다. 짭짤한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쳤고, 따뜻한 햇살이 그의 몸을 감쌌다.
“으… 으악! 이게 무슨!”
그는 황급히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가 예상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 그리고 그의 뒤로는 울창한 정글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은 분명 무인도였다.
“세상에… 고래가 나를 토해낸 건가? 그것도 하필이면 이런 곳에!”
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자신을 품고 있던 거대한 생명체, 고래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하지만 그의 귓가에 맴도는 ‘꿀꺽’ 하는 소리와, 온몸에 묻어 있는 비릿한 냄새는 현실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좋아, 박사 J. 당황할 때가 아니다.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해야 해.”
그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주위를 다시 한번 살폈다. 일단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그는 일단 몸에 묻은 모래와 액체를 털어내고, 주변을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의 호기심과 모험심이 다시금 발동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어떤 곳일까? 혹시 숨겨진 문명이나 유물이 있을까?
그렇게 한참을 걷던 그때, 그의 발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걸렸다. 그는 고개를 숙여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낡고 해진 천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가방이었다.
“이게 뭐지?”
그는 조심스럽게 가방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그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가방 안에는 두툼하게 쌓인 지폐 뭉치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어… 어어? 이게 다 뭐야? 돈이라고?”
박사 J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돈뭉치를 만져보았다. 진짜 돈이었다. 그것도 엄청난 액수였다.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 그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이런, 이런! 이건 예상치 못한 수확인데? 혹시 이 섬에 보물을 숨겨놓은 해적이 있었던 건가?”
그는 흥분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에는 절망감 대신, 새로운 희망과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이 돈이라면, 이 섬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터였다.
그는 가방을 메고 다시 해변으로 향했다. 돈 가방은 꽤 무거웠지만, 그의 마음은 가벼웠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무인도에 갇힌 불쌍한 조난자가 아니었다. 그는 돈을 가진, 계획이 있는 탈출자였다.
“좋아, 이제 뗏목을 만들어야겠어!”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튼튼해 보이는 나무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의 명석한 두뇌는 이미 탈출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는 곧장 나무를 베기 시작했고, 틈틈이 돈 가방을 열어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 돈으로 뭘 할 수 있을까? 맛있는 음식도 사 먹고, 멋진 연구실도 만들고… 상상만 해도 즐겁군!”
그는 뗏목 제작에 몰두했다. 그의 끈기와 엉뚱함은 이럴 때 빛을 발했다. 그는 거친 나무들을 능숙하게 다듬고, 밧줄로 튼튼하게 묶어 나갔다. 몇 시간 후, 드디어 제법 그럴듯한 뗏목이 완성되었다.
“자, 이제 이 녀석을 바다에 띄우면 된다!”
그는 뗏목을 바다로 끌고 갔고, 돈 가방을 조심스럽게 뗏목 위에 올렸다. 그의 심장은 두근거렸다. 드디어 탈출이다! 그는 뗏목에 올라타 노를 잡았다.
“안녕, 무인도! 다시는 오지 말자!”
그는 힘차게 노를 저었다. 뗏목은 천천히 해변을 벗어나 푸른 바다 위로 나아갔다. 그의 얼굴에는 승리의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그의 탈출은 순탄치 않았다. 뗏목이 어느 정도 나아가자, 바다가 갑자기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거센 파도가 뗏목을 집어삼킬 듯 흔들었고, 바람은 그의 뗏목을 이리저리 밀어붙였다.
“이런! 날씨가 왜 이렇게 갑자기 변하는 거야?”
그는 당황했지만, 이내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는 필사적으로 노를 저으며 파도에 맞섰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거센 파도는 그의 뗏목을 뒤집어엎을 듯 위협했고, 그는 뗏목에서 떨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을 몇 번이나 넘겼다.
“안 돼!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어!”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돈 가방이 물에 젖지 않도록 더욱 단단히 붙잡았다. 그의 눈은 뗏목이 향하는 먼 수평선을 향해 있었다.
그때, 그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어두컴컴한 밤하늘에 별들이 쏟아질 듯 반짝이고 있었는데, 그 별들의 위치가 마치 거대한 고래의 형상을 이루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는, 마치 고래가 자신을 인도하는 듯한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저… 저건…?”
그는 희미하게 떠오르는 기억을 더듬었다. 어린 시절, 밤하늘을 바라보며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별자리 이야기. 그런데 그 별자리 모양이, 왠지 모르게 낯설지 않았다. 마치 그의 기억 속 어딘가에 깊숙이 박혀 있는 퍼즐 조각과도 같았다.
“혹시… 저 별자리가…?”
그는 고래 뱃속에서 보았던, 해독할 수 없었던 기묘한 문양들을 떠올렸다. 그것들이 마치 이 별자리와 연결되어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는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뗏목을 필사적으로 조종했다. 다행히 별자리의 힘이었는지, 아니면 그의 필사적인 노력 덕분이었는지, 그는 점차 거센 파도를 헤쳐 나갈 수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의 눈앞에 희미하게 땅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저건…!”
그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것은 바로 섬이었다. 무인도가 아니었다. 사람의 흔적이 보였다.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 뗏목을 섬으로 향하게 했다.
마침내 뗏목이 섬에 닿았다. 그는 뗏목에서 내려, 젖은 모래사장을 걸었다. 그의 앞에는 그의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는 고대 문명의 유적처럼 보이는 오래된 석상들이 늘어서 있었고, 그 석상들 사이에는 붉은색 안료로 그려진 거대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벽화에는 알 수 없는 문자와 함께, 한 인물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박사 J는 숨을 죽이고 벽화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의 눈이 커졌다. 벽화 속 인물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자신과 닮아 있었다. 아니, 닮은 정도가 아니었다. 마치 그의 어린 시절 초상화와 놀랍도록 똑같았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는 혼란스러움에 휩싸였다. 그의 기억 속 어린 시절의 퍼즐 조각들이, 마치 거대한 그림의 일부처럼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가 찾던 유물, 고대 문명의 비밀… 그것들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이 섬은, 이 벽화는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박사 J는 알 수 없는 존재감에 휩싸여,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의 모험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일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