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렌은 검을 뽑은 채 리아와 어깨를 맞대었다. 숲속, 짙은 어둠 속에서 붉은 눈동자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 눈빛은 날카롭고 차갑게 빛났고,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이 다가왔다. 수풀 너머에서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렌은 심장이 점점 더 빠르게 뛰는 걸 느꼈다. 리아는 떨리는 손끝으로 아렌의 팔을 잡았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제가 곁에 있을게요.”
리아의 목소리는 분명했지만, 그 속에 감춰진 불안이 전해졌다. 아렌은 그녀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앞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붉은 눈이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더욱 가까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어둠을 가르며 괴이한 형상의 야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평범한 숲의 동물이 아니었다. 어깨와 등 위로 푸른 덩굴이 자라고 있었고, 이빨은 길고 날카로웠다. 무엇보다, 그 눈 속에는 알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야수는 낮게 으르렁거리며 두 사람을 맴돌았다. 리아는 안절부절못하며 아렌 뒤로 몸을 숨겼다. 아렌은 검을 들어 야수와 눈을 마주쳤다. 뭔가 이상했다. 그 야수의 몸엔 희미한 은빛 마법의 흔적이 감돌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 괴로워했다.
아렌은 순간 망설였다. 이 야수는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뭔가 숲의 비밀과 관련이 있어 보였다. 바로 그때, 리아가 조용히 속삭였다.
“저... 저 야수, 어쩐지 익숙해요. 제 기억 저편에서 느껴본 적 있는 기운이에요. 혹시... 숲의 정령이였던 존재가 변한 것일까요?”
리아의 눈이 흔들렸다. 아렌은 그녀를 지켜보며 생각에 잠겼다. 검을 휘둘러 야수를 물리치는 건 쉬울지 몰랐다. 하지만 혹시 이 존재가 리아의 기억과 맹세의 비밀에 연결되어 있다면, 무작정 공격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야수는 다시 한 번 으르렁거리며 앞으로 다가왔다. 이빨을 드러낸 채,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몸을 낮추고 있었다. 아렌의 손에 땀이 맺혔고, 리아는 숨을 죽인 채 그의 옆에 바짝 붙었다.
바람이 일고, 별빛이 두 사람 위로 쏟아졌다. 순간 야수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그 은빛 속에서, 아렌은 언뜻 누군가의 슬픈 얼굴을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리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 야수를 향해 말을 걸었다.
“혹시... 당신, 저를 아나요?”
야수의 움직임이 갑자기 멈췄다. 그 눈동자에 잠깐 망설임이 깃들었다. 그러나 이내 다시, 야수는 분노에 휩싸여 포효했다. 그 울음소리는 숲 전체에 퍼져나가며 어둠을 흔들었다. 아렌은 한순간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임을 직감했다. 검을 휘둘러 싸울 것인가, 아니면 대화를 시도해볼 것인가? 리아의 떨리는 손이 아렌의 손등을 감쌌다. “아렌, 제발 조심해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순간, 야수가 거대한 앞발을 들어 두 사람을 향해 홱 내리치려 했다. 아렌은 단숨에 앞으로 뛰어나가며 태세를 취했다. 별빛이 검날에 반사되어 은은하게 빛났고, 어둠 속에서 시간조차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 아렌은 숨을 멈추었다. 그 찰나의 순간, 마음속의 열망이 더 선명해졌다. 내가 지키겠다. 왕국도, 리아도, 그리고 이 숲까지도.
야수의 앞발이 곧 떨어지려는 순간, 아렌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