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밴다나를 두른 남자들이 골목 입구를 막았다. 그들의 눈빛은 날카로웠고, 손에는 약간 감춰진 쇠파이프와 주먹이 보였다. 브라이언은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태지 곁을 단단히 지켰다. 둘은 서로를 흘끗 바라보며, 숨죽인 담배 냄새와 어둠에 실려 온 피비린내를 맡았다.
"이 구역엔 볼 일 없어, 돌아가." 태지가 침착하게 말했다. 목소리는 낮고, 결심은 분명했다. 상대방의 리더격인 사내가 비웃음을 흘렸다.
"네가 우리를 막는다고 생각해? 여기선 우리 말이 법이야."
브라이언이 총을 꺼내 드러냈다. 그들의 무기와 상대의 숫자가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태지는 곧장 리더의 눈을 바라보며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그 순간, 가느다란 긴장감이 골목에 퍼졌다.
"우린 그냥 쉬려고 온 거야. 여기서 피를 보긴 싫어. 근데 네가 필요하다면, 우리도 물러서지 않는다."
상대방의 몇 명이 욕을 섞으며 다가왔다. 브라이언의 손이 떨리는 듯했으나, 태지가 옆에서 미묘한 손짓으로 그를 진정시켰다. 태지의 마음속엔 증오와 두려움, 그리고 어딘가 모를 슬픔이 스며 있었다. 몇 년 전 브라이언이 쏘았던 총성, 그리고 그 후의 밤들이 뇌리를 스쳤다.
"이 자식들, 우리 구역을 우습게 보네."
상대 리더가 손짓하자, 네 명이 앞으로 돌진했다. 브라이언이 총을 겨눴고, 태지는 몸을 낮춰 리더를 견제했다. 순간, 어딘가에서 발소리가 크게 울렸다. 총성이 터졌고, 벽에 불빛이 튀었다.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태지는 자기도 모르게 브라이언의 팔을 잡아끌었다. 골목 벽을 등지고 둘이 숨었다. 심장이 쿵쾅거렸고, 오래된 상처가 욱신거렸다. 피와 연기의 냄새, 싸움의 예감이 코끝을 찔렀다.
하지만 그 순간—
태지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화면에는 '엄마'라는 이름이 떴다. 한 손엔 피 묻은 총, 다른 손엔 떨리는 전화기.
주위에선 여전히 싸움 소리가 메아리치고, 브라이언은 숨죽인 채 태지를 바라봤다. 핸드폰이 계속해서 울렸다. 어둠과 공포, 그리고 가족의 걱정이 한꺼번에 태지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태지는 한순간, 선택의 기로에 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