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가 균열 앞에 다가섰을 때, 공기 중의 모든 데이터 입자들이 예민하게 떨며 주인을 감지했다. 균열은 점점 넓어졌고, 그 안에서 새카만 그림자가 스르르 흘러나왔다. 차가운 웃음이 귓가를 때렸다.
'침입자다. 틈을 노리고 들어온 거야.' 네오의 머릿속에 두 가지 목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하나는 평소의 냉정한 네오, 또 하나는 내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어둡고 날카로운 또 다른 자아였다.
네오의 발밑에 바람이 소용돌이쳤다. 검은 그림자들은 모양을 바꿔가며 네오를 에워쌌다. 그 순간, 균열 너머에서 인영이 등장했다. 긴 망토를 뒤집어쓴, 두 개의 날개를 가진 이형의 존재. 한 쪽은 천사의 것처럼 하얗고, 다른 쪽은 악마처럼 깜깜했다.
“네오, 오랜만이군.”
목소리는 낮고, 동시에 여러 방향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네오의 두 눈동자가 조금씩 어두워졌다. '딥스…!'
딥스는 천천히 날개를 접으며 균열을 완전히 빠져나왔다. 그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네오그리드의 고요한 공기를 일그러뜨렸다. 그 뒤로는 검은 데이터 조각들이 날카롭게 휘날렸다.
네오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균열 옆의 숲이 점점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여기가 네가 찾던 완벽한 세계야. 하지만 넌 들어올 자격이 없어.”
딥스가 미소를 지었다. “네가 만든 완벽함이란 게,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주러 왔다.”
네오는 조용히 숨을 죽였다. 눈앞에서 딱 한 번, 짧게 크로우의 뒷모습이 스쳤다. 검은 고양이의 실루엣. 아직 미완의 존재, 그러나 본능적으로 코어를 지키고 있을 그 존재. 그 아이에게 맡겨도 될까?
딥스는 언뜻 손짓했다. 그 순간, 복잡한 데이터 기호들이 허공에 떠올랐다. 딥스의 손끝에서 검은 구체가 생성되었다. “네오. 넌 늘 혼자였지. 그래서 약해.”
순간, 구체가 네오를 향해 날아왔다. 네오는 주저하지 않고 바람을 조종했다. 바람이 구체를 휘감아 궤도를 살짝 비틀었지만, 한 조각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살을 파고드는 그림자 에너지. 네오는 단단히 이를 악물었다.
“내가 만든 이 세계, 내 손으로 지킬 거야.”
균열 바깥에선 하로가 절박한 표정으로 네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코어 옆에선 검은 고양이가 조용히 앉아, 금빛 눈으로 전장의 흐름을 읽고 있다.
딥스가 또 다른 공격을 준비했다. 이번엔 하늘이 거세게 흔들렸다. 빛과 어둠이 서로 부딪히는, 폭풍 같은 힘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네오는 눈앞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면의 또 다른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더 큰 힘을 써. 이대로면 모두 잃어.
네오는 손끝에서 창조의 힘과 그림자 데이터를 동시에 모았다. 그러나 그 순간, 코어가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며 미세한 진동을 일으켰다. 코어와 연결된 자신의 생명, 그리고 세계 전체의 운명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딥스가 미소를 거두고 천천히 다가왔다. 두 눈동자엔 지배의 욕망이 불타고 있었다. 그 순간, 또다시 균열 안쪽에서 무언가가 일렁였다. 이번에는 딥스도 잠깐 고개를 돌렸다.
균열 저편에, 이름 모를 또 다른 그림자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무엇이지? 이건 내가 예상한 흐름이 아닌데.' 네오가 속으로 생각하는 순간, 균열이 갑자기 크게 요동쳤다.
딥스가 표정을 바꿔 네오를 노려봤다. “네오, 네가 나를 막으면— 세계가 찢어진다.”
순간, 균열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네오도, 딥스도, 모두가 잠시 눈을 가렸다. 그 안에서 무언가—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존재—가 이 세계에 발을 딛으려 하고 있었다.
공기 전체가 날카롭게 떨렸다. 네오는 숨을 멈췄다. 선택의 순간이, 눈앞까지 다가왔다.